지난 시간에 살펴본 문장을 보겠습니다.

1. (슬픈 드라마를 보니) 눈물이 나네.

2.  이쪽에 발자국이 나 있어.

3. 저기 빈자리가 하나 났어.

4. 그 동네에서 사고가 났어.

5. 내 이름이 명단에 올라 있어.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그 분들의 댓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1. I have tears in my eyes.
2. Here are some footprints.
3. There is an empty seat.
4. There was an accident in the town.
5. My name is on the list.

자, 우리말과 영어를 비교해보십시요.

눈물이 나다.

발자국이 나다.

빈자리가 나다.

사고가 나다.

이름이 올라 있다.

위에서 '밑줄'친 부분은 영어에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렇죠?

우리말                                  영어

눈물이 나다.--------나는 눈에 눈물을 갖고 있다.

발자국이 나다.-------여기에 발자국들이 있다.

빈자리가 나다.--------빈자리가 있다.

사고가 나다.-----------사고가 있다. 

이름이 올라 있다.--------이름이 있다.

'나다', '오르다(올라)'같은 우리말 (보조)동사가 죄 '있다(there/here is)'로 바뀌었네요.

다시 한 번 위에서 비교한 두 나라 말을 잘 살펴보십시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봅시다.

왼쪽이 쉽습니까?

오른쪽이 쉽습니까?

당연히 오른쪽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어려운 왼쪽말에 너무 익숙해서(모국어이므로)

그보다 더 쉬운 오른쪽 말이 안 나옵니다.

이런 비극이 또 있단 말입니까?

그노무 웬수같은 영어가 도통 안되는 이유가...

혹시 우리말이 어렵고 영어가 더 쉬워서...

솔직히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온지 몇년 된 사람도,

웬만큼 영어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어? 저기 빈자리 하나 났다. 빨리 가자."

라는 말을 영어로 옮기려 하면!

그노무 아무 쓰잘데기 없는 '(빈자리가) 나다'에서 콱콱 말문이 막혀버린다 이겁니다.

나다....가 뭐더라.

머릿속에서는 한영사전 페이지가 소리도 요란하게 펄럭이며 뒤적여집니다.

나다...나다...나다...나다...

그러는 사이, 말을 기다리던 상대방은 저만치 가버리고,

뒤에 홀로남은 우리는...

"역시, 난 영어가 안돼!"

그러고 집으로 달려와 인터넷 뒤지든, 사전을 찾든, 누구한테 물어보든,

그 답이 "There is an empty seat."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 때의 마음은 10년 사귄 연인이 고무신 꺼꾸로 신은 걸 알게 된 순간처럼

배신감에 바들바들 떨립니다.

"이렇게 쉬운 것도 몰라! 이 한심한!"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쉬운' 영어를 '쉽다'고 분명 생각했으면서

자꾸 자꾸 '어렵기 그지없는' 언어로 승격시키기만 합니다.

이 기회에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영어가 어려워서 못하시는 게 아닙니다.

쉬운 영어를 쉽다고 인정하지 못해서 못하는 겁니다.

분명히 우리는 우리말을 영어로 바꾸었을 때,

"에게?" 했던 경험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 이유를 이 토종댁은 저 위 예문에서 보았듯,

우리말이 너무 '섬세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로 '발자국'은 그저 '있는' 존재가 아니라....'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말로 '얼룩'은 그저 '있는' 존재가 아니라....'묻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말로 '이름'은 그저 '있는' 존재가 아니라...'올라' 있는 존재입니다.

거꾸로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우리말을 배우는 영미인들은 저 많은 '짝꿍' 동사들을 다 외워야 합니다.

얼룩이 '묻어' 있다.(우씨..그냥 '있다'하면 안되나?)

사고가 '났다'.(우씨..그냥 '있다' 하면 안되나?)

빈자리가 '났다'(우씨...그냥 '있다'하면 안되나?)

영미인들이 보기에 우리 한국말은 '너무' 섬세하고 조직적입니다.

각 문장성분에 해당되는 토씨가 일일이 다르고요.

어미는 시제, 활용에 따라 얼마나 눈부시게 변하는지,

그거 따라잡으려면............

우리가 영어 생각하다가 버벅거리는 시간의 몇 배는 더 헤매야 합니다.

자, 해결책은 이겁니다.

지나치게 섬세해서 흡사 '군더더기'처럼 생각될 수도 있는 우리말 (보조)동사들을

버립시다.

얼룩이 '있다'면 되지....굳이 '묻어' 있다.

라고 안 해도 되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얼룩은 어디에 '있는' 그 자체로 '묻어있는' 거니까요.

혹시 다음번에 우리말을 영어로 옮기다가 막히시거든,

우리말에서 '군더더기'일 수도 있는 말을 털어내지 못해서는 아닌가...

짚어보시기 바랍니다.

의외로 영어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내려놓기!

우리말을 내려놓아야 영어가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