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이어서 다시 우리말과 영어의 '감정'의 차이에 대해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영어의 감정들...

surprised
thrilled
shocked
disappointed
frustrated
annoyed

우리말의 감정들...

놀라다
기쁘다
실망하다
좌절하다
짜증나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영어의 감정들은 모두 '동사'에서 변형된 '형용사'입니다.
한결같습니다. 모두 품사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은 놀라다, 실망하다, 좌절하다....
이건 모두 자동사입니다.

그리고 기쁘다, 즐겁다, 등은 형용사입니다.

다르지요.
품사가 일단 다릅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감정은 형용사가 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말에서는 왜 '동사'와 '형용사'가 막막 섞여있나요?
사실, 구분이 아주 모호한데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구분이 모호합니다.
사전마다 동사다, 형용사다 헛갈려하기도 하니까요.

영어는 더 쉽습니다. 한결같이 '형용사'입니다.
왜요? '동사'에 '-ed'를 붙여서 과거 분사로 만들었으니까요.
과거 분사는 '수동', '완료'의 의미를 가진 형용사입니다.

fall/자동사로 '떨어지다'라는 뜻입니다
fallen/형용사로 '떨어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죠?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아마 우리말에서 '감정' 중에 동사라는 게 있다고 하면
깜짝 놀랄 겁니다.

"감정이 움직이나요? 왜 감정이 동사???"

맞는 말 아닌가요?

감정에 무슨 '움직임'이 있습니까?

그러나 분명 '놀라다', '실망하다'는 동사입니다.
형용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동사면서 동사 활용은 안합니다.

동사라면 '~하자'가 붙어서 말이 되야지요.

놀라자.
실망하자.

이런 말은 성립 안 되지요.

그러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또 놀라겠죠.

"그러면서 왜 품사가 동사라는 겁니까?"

뭐...이 정도 되면 우리는 할 말 없습니다.

영어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에 'logical'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보아서 말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게 바로 영어의 '감정'에 적용됩니다.
영어의 감정 표현이 수동태라는 것 말입니다.

surprised
thrilled
shocked
disappointed
frustrated
annoyed

이런 단어들은 이쪽에 어떤 영향을 주는 다른 쪽이 있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아무 자극도 없이 혼자 놀라거나, 기쁘거나,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짜증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바깥 쪽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의해 이런 감정들을 느낍니다.
결코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자동사'가 될 수 없는 거지요.

그리고 감정은 '상태'를 말하는 '스틸 사진'입니다.

'be 동사'의 출현은 당연한 거지요.

이제는 '원형'을 따져보겠습니다.

영어에서 감정을 나타내는 형용사들은 원래 무엇이었나요?
예...동사였습니다.
동사가 '원형'입니다.

surprise-놀라게 하다
shock-충격을 가하다
disappoint-실망시키다
frustrate-좌절시키다
annoy-짜증나게 만들다

그런데 우리말의 경우는 어떤가요?

놀라다
실망하다
좌절하다

등이 원형입니다.

여기서 원형이란 사전에 나오는 '기본형'이란 말입니다.

위의 단어들에 접미사나 보조 용언 등을 붙여 바꿔볼까요?

놀래키다/놀라게 하다
실망시키다/실망하게 하다
좌절시키다/좌절하게 하다

자, 뭘 발견하셨나요?

그렇습니다.

영어는 감정의 '원형'들이 모두 동사인데 분사가 되면서 형용사로 파생되었습니다.

우리말은 그 반대입니다.

우리말은 감정의 '원형'들이 거의 형용사입니다.
그런데 '사동'의 의미로 바뀔 때는 '~시키다', '~게 하다' 등이 붙어 동사로 바뀝니다.

그런데 왜요?

그건 '법칙'입니다.

감정의 경우.....

영어에서는 동사에 'ed'를 붙여서 수동의 의미를 가진 형용사(과거분사)를 만들고

우리말은 동사나 형용사에 접미사 등을 붙여서 사동의 의미를 가진 동사를 만듭니다.

그러게 왜 그러냐고요?

거기에 대한 답은 하나입니다.

영어는 그러기로 '법칙'을 정했고, 우리말은 그러기로 '법칙'을 정했을 뿐입니다.

우리말의 기준에서 보면 영어가 거꾸로고, 영어의 기준에서 보면 우리말이 거꾸로입니다.

하지만 결코 두 언어의 어느 쪽도 '잘못'은 아닙니다.

이제 그만 우리 땅에만 발붙이고 우리식 신토불이만 고집하는 국수주의를 발휘하지는 맙시다.

토종댁의 신토불이는 우리 땅만큼 남의 땅도 존중합니다.
영어는 남의 땅 말입니다.
그 땅의 기준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 땅에 대한 애정은 잊어서는 안 되겠고요.
제 말은...남의 땅을 사랑하자는 게 아니라 이해하자는 겁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