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글에 썼지만, 저희집은 그닥 넉넉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같이 임원 하는 친구들, 저만큼 공부 하는 친구들과 비교해 봤을 때, 저는 늘 가장 싸구려 옷을 입고 있었고, 가장 싸구려 반찬을 싸갖고 다녔죠. 오리털 파카가 한참 유행하던 때, 파스텔톤 뽀송뽀송한 오리털 파카를 사입고 온 친구들을 보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엄마한테 오리털 파카 얘길 하니, 어디서 시뻘건 비닐 커버같이 생긴 오리털 파카를 사오셨는데.. 지금 생각하고 보면 돈의 문제보다 저희 엄니 취향의 문제였던 거 같기도 하네요. =.=

운동회, 소풍, 어디 하나 엄마가 따라오신 적이 없었죠.

연년생 언니가 있어서, 잘 따라 다니지도 않으셨지만, 따라 나섰다 하면 언니네 반에만 가셨어요. 이상하죠? 전 제가 애 키우면서도 이 부분이 참 이해가 안 가요. 왜 똑같이 임원을 하는데 언니네 반만 가는지. 한번씩 돌아가며 가줄 수도 있는데..

늘 새로운 도시락 반찬에 (저희집은 같은 거 일주일 싸가는 건 기본-이것도 그냥 엄마가 게을러서 그랬던 듯.. 먹을 게 없어본 적은 없거든요 ㅠ.ㅠ) "누구누구야~ 더운 날씨에 공부하느라 힘들지? 힘내~ 엄마가 사랑한다~" 뭐 이런 쪽지를 도시락에 살포시 꽂아 주시는 친구들의 엄마들... 정말정말 부러웠습니다. 최근 개인의 취향이란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그러죠.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 정문 앞 담벼락에 늘어서서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 그게 참 부러웠다고. 제가 딱 그랬어요. 아침엔 멀쩡했다 하교길에 비오던 날, 늘 비를 맞고 집에 갔거든요..

암튼. 그래서 저는 늘 다른 아이들이 부러웠어요. 유치원 시절부터, 학교 끝나고 집에오면 엄마는 없고 문은 잠겨있어 담 넘어 집에 들어가는 건 기본이었고, 유치원 때부터 혼자 라면 끓여 먹고 했거든요. 근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개스스토브 한번도 안 건드려 본 애들 많더라구요. ㅠ.ㅠ

전 그래서 제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줄 알았어요. 집에 가도 간식 챙겨주며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도 없고. 혼자 세상에 내놓아진 느낌이랄까요... 근데 6학년 때 제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죠.

6학년때 선생님이 참 좋은 분이셨어요. 애들 공부도 엄청 많이 시키시고. 근데 선생님이 어느날 같은 반 친구를 칭찬 하시데요. 퇴근길에 시장에 들렀는데, 그 친구가 과일을 팔고 있더래요. 6학년짜리 여자아이가. 그 아이 집이 과일가게인가 채소가게인가를 했는데, 집안 사정이 안 좋고 부모님 중 어느 분이 편찮으셨나 그랬나봐요. 그래서 그 아인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 동생 밥 챙겨주고 가게 보고 자기 공부하고 부모님들 밥까지 챙겼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 얘기를 충격적으로 받아 들였나 모르겠어요. 근데 제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중학교 가기 전에 한참 공부 빡시게 할 땐데, 사실 그 선생님이 숙제도 엄청 많이 내시고 시험도 엄청 자주 보고 해서 숙제 해가는 것만도 빡빡했거든요.. 근데 가게를 돌보고 집안을 돌본다니요.. 이 친구가 저랑 삐까삐까하게 공부 잘 하던 친구였거든요. 저는 태어나서 저만큼 공부하는데 저보다 힘들게 사는 애 처음 본 거거든요. ㅠ.ㅠ

잘 생각해 보면, 이 아이의 이야기가, 5학년 때 제 욕설일기장 만큼이나 제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왔던 거 같아요. 나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게, 늘 웃는 얼굴로 최선을 다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어정쩡하게 어린 나이의 저를 숙연하게 만들었어요.

그 친구요. 공부 잘 했어도 남들처럼 사립으로 대학 보내줄 수 있는 부모 없어 지방대 나왔지만, 우여곡절 끝에 미국와서 박사까지 제 힘으로 마쳤구요. 이 불경기에 이번 가을부터 한 대학에 assistant professor로 취직도 됐대요.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영어도 턱없이 모자른 친구가요. 불굴의 의지로 이뤄낸 결과라 생각 되구요. 저랑 친한 친구는 아니지만, 이 친구 생각하면 마치 제 딸인양 참 자랑스러워요.

요즘 머리 쥐어 뜯으며 텍사스 바 공부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합니다. 아 정말 죽도록 싫다고 베베 꼬다가도, 이것마저 배부른 소리지 하고 정신을 다잡아 봅니다. 나보다 나은 환경의 사람을 보고 부러울 수 있고, 현재 나의 상황에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멋지게 자립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힘내세요. 내일은, 오늘보다 한결 나아질 꺼예요. 모두 함께 화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