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서를 받아내신 분들이 꽤 계시군요... ㅠ.ㅠ

각서의 법적 효능에 대해 글 올려 드리겠습니다.

Transmutation 관련 글을 읽어 보시고, 그럼 역으로, 잘못한 놈이 쓴 각서는 이혼시 어떻게 보아질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똑똑한 미씨님들이 계시네요. 완전 훌륭한 train of thought이심당. ^^

각서란 것이 "다시는 바람을 안 피우겠다"는 법적 의미가 전혀 없는 종이 쪼가리일 수도 있고, "다시 바람을 피울 경우에는 내 전재산을 마누라에게 양도하고 양육권도 완전히 포기하겠다"라는 엄청난 법적 권리를 포기하는 문서가 될 수도 있지요.

결혼기간 중 쓴 각서는 이혼시, 여러가지 법적 울타리 안에서 review를 받게 됩니다. 우선 각서가 public policy에 어긋나서는 안 됩니다. 즉, 이혼을 권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던가, no falut state인데 배우자의 fault 때문에 법적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던가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거죠. 예로, 캘리포니아에서는 바람을 피운 것이 이혼시에 양육권이나 재산분할 싸움에서 거의 법적 영향이 없는데요 (no fault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각서에 "바람을 피우면 모든 재산을 내놓겠다"라고만 적었을 경우, 이 각서는 무효가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주의 가정법상 바람 피운 것을 탓하지 않는데 (도덕적인 결점일 뿐이지 불법이 아니라는 거지요) 법과 반대로 바람 피운 것 때문에 법적인 권리를 뺏어버릴 수는 없다는 거지요. 이게 쓰고 보니 좀 이상한데... 암튼 그렇습니당...

또, 각서는 "계약서"로서의 구색을 갖춰야 하는데요. "약속"과 "계약"의 다른 점을 보자면, 약속이 계약이 되려면 "쌍방의 합의" + "계약상의 약인 (Consideration)"이 있어야 합니다. 막연히 "5년 후에 집을 물려 주겠다"라고 하는 건 약속이지요. 5년 되기 전 언제고 "뻥이야~"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집을 받을 줄 알고 김칫국 마시던 사람이 법적으로 손을 쓸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그런데 "네가 5년 안에 변호사가 되면 내가 5년 후에 집을 물려 주겠다"라고 하고, 상대방이 5년 안에 변호사가 되면, 이 약속은 계약이 되는 겁니다. 집을 꼭 물려줘야 하는거죠. 계약상의 약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인데... 암튼, 그렇습니당..

부부 사이에 성립된 계약이 법적 효력을 발휘하려면, 보통 계약법상의 "합의" + "약인"이 있었거나, 일전에 설명드린 transmutation의 룰을 따라서 하좌가 없어야 합니다. "약인" 없이도 부부사이에서는 재산상의 법적 권리를 포기 및 양도할 수 있는데요. 각서에서 이런 문구가 나올 경우, 이 각서를 통해 득을 보게되는 배우자가 권리를 포기하는 배우자에게 undue influence를 통해 각서를 받은 게 아니라는 증명을 해야 합니다 (transmutation 칼럼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항소심에 올라왔던 케이스 하나는 이랬습니다.

남자가 바람을 피워서 결혼이 파경을 맞았는데요. 이혼을 하려는 아내에게 남자는 눈물, 콧물 흘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빕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에게 재산 포기 각서를 쓰게 하지요. 내용인 즉슨 "남자의 잘못으로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나, 남자가 싹싹 빌어 좀 더 살아주기로 합의를 봤다. 허나 남자의 잘못으로 이혼을 하게 될 경우, 남자는 XYZ의 모든 법적 권리를 여자에게 넘겨 주기로 한다" 였지요.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몇년 안에 또 바람을 피우고 덜미를 잡혀 이혼을 하게 됩니다. 여자는 몇년 전에 받아놨던 각서를 법원에 제출하는데요. 남자는 그 각서가 public policy에 어긋나고, 완전히 자의에서 쓴 게 아니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합니다. Trial court에서는 여자편을 들어줬는데, 찌질이남편 항소까지 하십니다. 항소심에서는 뭐라 했을까요?

항소심에서는 이 각서를 traditional contract theory로 봤습니다. 쌍방의 합의 (mutual consent/assent)가 분명히 있었고, 계약상 약인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 약인은 바로 여자가 이혼서류를 안 넣고 기다린, 몇년의 세월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계약은 유효하며, 남자는 계약서의 term에 따라 계약적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판결 내립니다. 어찌보면 "또 바람을 피면 재산을 넘긴다"와 같은 의미의 각서이지만, 법적 의미는 180% 다르다는 거지요.

Transmutation에 언급했듯 부부는 이혼이 finalize되는 순간까지 서로에게 fair하고 loyal해야 하는 fiduciary duty를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하겠다고 맘 먹었다고 맘대로 돈을 빼돌리고, 내연녀에게 집을 사주고 할 수 없는 겁니다. 또 바꿔 말하자면, 아무리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나쁜짓을 했어도 이 쪽에서도 이혼하는 순간까지는 남자에게 fair 하고 loyal해야 할 (법적인 dealing에서) 의무는 갖고 가는 거라는 거죠 (너는 죽일놈이니 쪽박을 차게 해주겠다는 마음가짐은 가지심 안 된다는 말씀..). 이런 걸 염두에 두고 각서를 쓰셔야 각서가 법적 효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껍니다.

양육권이나 양육비에 관한 각서는 위의 사항들 말고도 best interset of child가 함께 고려돼야 하기 때문에 좀 더 복잡해 지고요. 양육비를 안 주고받기로 한 각서는 무효하고 (접때 말씀드렸듯이).

각서를 이래저래 썼는데, 이게 유효 할까요?하고 물으셔도 변호사들의 답은 "maybe, maybe not"이 되기 쉬울 껍니다. 왜냐하면 이 법적 효력 여부 자체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케이스를 담당하는 판사 한사람 뿐이거든요. 물론 각서를 통해 잃을 게 많은 사람은 계약서 자체가 무효라고 하던지 타의로 서명한 거라고 하던지 주장을 하고 나올 것이고, 각서를 통해 얻을 게 많은 사람은 온갖 증거를 대서 이게 public policy에 어긋나지 않고, 계약상의 요인들을 다 갖추었고, 상대방이 온전히 자의로 서명한 것이라는 등의 증명을 해야 하겠지요.  

"각서"라고 생각하면 집에서 간단히 쓸 수 있는 종이쪼가리 같지만, 이게 법적으로 효능을 발휘하게 쓰자면 사실 혼전계약서 이상으로 복잡한 법적 이론들에 얽히기 때문에요... 나름 풀어 쓰려고 노력은 해 봤습니다만.. 이해가 가시려나 모르겠네요.. 암튼,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셨음 해요!!!

PS: 공증을 하면 법적 효력이 생기는지 궁금해하신 분이 계셨었네요. 공증이라는 거 자체가, 서명을 한 사람이 본인이 맞다고 증명을 해주는 시스템이지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사실이라던가 그 문서의 합법성을 따져주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강압에 의해 문서에 서명한 경우" 칼럼에 올려 드렸듯, 아무리 공증을 받은 합의서라고 해도, 얼마든지 서명할 당시의 "강압 또는 타의에 의해 서명"한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가 가능합니다. Notary public은 이 사람이 내 앞에서 서명한 사람이 맞다라고 verify해주는 역할을 해줄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