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름 배달되어 온 우편물을 정리하다가 캘리포니아주 경찰국에서 온 기부금 요청서를 발견했다.

작년 가을부터 기다리던 것이었다.

작년 가을, 토요일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누가 아구찜을 했다고 오라기에 나서는데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쫄래쫄래 따라 나섰다.

'그래, 나만 가냐, 너도 가자'싶어 냉큼 차에 태웠다.

날씨가 맑고 좋기에 차 지붕을 열고 운전을 하기로 했다.

지붕 열린 빨간 스포츠 카에 방금 목욕을 마친 하얀 강아지,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내 머리카락....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남들한테 내가 얼마나 멋있게 보일까 스스로 도취하며 신나게 운전을 하고한 5마일 쯤 갔을까. 이게 웬일,경찰차 한 대가 웽~ 사이렌을 울리며 내 차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처음엔 경찰차가 나를 따라오는 줄 꿈에도 몰랐다.

워낙 눈이 나쁜데다 운전솜씨가 젬병이라서 항상 제한속도나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과속이나 별다른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마 나를 잡으러 오랴,차를 세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백미러로 보니 경찰이 연신 차를 세우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왜 나를 세워?

의아했지만 어쨌든 길 가장자리에 차를 세웠다.

경찰차도 내 차 뒤를 따라 붙어 멈추더니 곧 키가 장대만한 경찰관이 내렸다.그리고 내 차 곁으로 걸어 왔다.

"무슨 일인데요?"

나는 당당하게 물었다.

아무리 권위가 하늘을 찌르는 미국경찰이지만 길가는 선량한 시민을 아무 이유없이 잡을 수 있냐는 항의가 다분히 담긴 어조로..

짙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반이나 가린 경찰관은 그때까지 내 팔에 안겨 밖을 내다보고 있던 강아지를 가르켰다.

"이 강아지의 운전 면허증를 보여 주시오."

뭣이라? 강아지 운전 면허증?날씨도 덥지 않은데 이 아저씨가 더위를 먹었나?

그때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던 나는 특유의 유머 기질을 발휘해 '안그래도 운전면허증을 따려고 시험을 쳤는데 이 강아지가 하도 띨띨해서 벌써 두 번씩이나 떨어졌단다. 지금 세 번째 시험을 준비중이다' 고 응수를 했다.

내 말에 짙은 선글라스에 반쯤은 가려진 경찰관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가 말했다. 

"그래요? 운전은 반드시 운전면허증이 있는 사람만 하게 돼 있는데 운전 면허증도 없는 강아지가 운전석에 탔으니 딱지를 떼야 겠소."

아뿔사,이거였구나!

갑자기 가슴이 와랑와랑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단 한번도 위법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강아지의 운전석 탑승.

이상하게 우리 강아지는 내 차에 타기만 하면 반드시 내 무릎으로 올라 왔다.

그리고는 두 다리는 내 무릎에 놓고 두 앞 발은 핸들을 잡은 내 왼쪽팔에 걸친 채 바깥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강아지를 팔에 걸친 채 운전하는 게 불편은 했지만 항상 집안에만 갇혀 있는 강아지가 얼마나 바깥 풍경을 보고 싶으면 그럴까 싶어 그동안 가만두었던 것이다.

"다른 법규를 위반한 것도 아니고 강아지를 무릎에 앉혔다고 딱지를 떼는 건 너무한 것 아녜요?

풀이 팍 죽은 나는 더듬더듬 말했다.

딱지를 뗄 때 떼더라도 일단은 사정이라도 한번 해야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딱찌 뗄 준비를 하던 경찰관의 눈이 내 차 창문 구석에 붙은 스티커를 발견한 것은...

아는 사람이 경찰국에 기부금을 몇 십불 냈더니 경찰 마크가 그려진 스티커가 우송돼왔다며 주길래 무심코 차창 구석에 붙혀 놓은 거였다.

경직되어 있던 경찰관의 얼굴에 약간 미소가 서린다 싶더니 '다음부터는 절대 강아지를 운전석에 태우고 다니지 마시오'라는 주의와 함께 나를 보내주었다. 나는 안도의 숨과 함께 뒤도 안돌아 보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뒤부터는 절대 강아지를 무릎에 태우고 다니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기부금 한푼 내지 않고 얻은 스티커로 위기를 모면한 후 늘 마음이 편치않았었는데 마침 오늘 기부금 요청서가 날라온 것이었다.

오늘 나는 기부금을 보낼 것이다.

오늘 보내는 기부금은 지난번 딱지를 떼지 않고 순순히 날 보내준 경찰관에 대한 순수한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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