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오전.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길다고 이름난 한 교차로의 신호대기에 걸리게 되었다. 신호대기에 걸리면 늘 하던 버릇대로 백미러로 뒷 차를 힐끗 보았다. 그런데 뒷 차에는 놀랍게도 내가 잘 아는 부부가 타고 있었다.

자영업을 하는 부부였는데 운전하고 있는 차나 옷 차림새로 봐서 그들은 교회에 가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늘 허름한 작업복에 금방이라도 설 것 같은 고물 밴을 끌고 일을 다녔는지만 일요일, 교회가는 날 하루만은 반짝반짝한 정장에 차고에 고이 모셔두었던 비싼 차를 운전했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려는데 차안 분위기가 심상찮은 것 같았다. 얼굴들이 험상궂게 일그러져 있었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부부가 서로 악을 써대고 있는 것 같았다.

웬일일까? 거룩한 주일 아침에...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구경이라지만 일요일 아침, 교회가는 차림새를 하고 그것도 차 안에서, 옆 운전자들이 흘낏흘낏 쳐다보거나 말거나 인상을 험악하게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이 그리 썩 좋아보이지 않아 백미러로 갔던 눈을 거두려는 순간이었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얼굴을 냅다 후려치는 게 보였다. 잠시 어깨를 숙였던 여자는 번쩍 얼굴을 들더니 남편의 가슴을 두 주먹으로 마구 쳤다. 남편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주먹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그 얼굴에 드러난 곤혹스러운 표정이라니....

마침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얼른 엑스레이터를 밟아 차를 움직였다.

앞만 보고 계속 달리다가 백 미러로 뒤를 보니 그들 부부의 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계획했던 대로 교회를 갔는지,아니면 차를 돌려 집으로 가서는 못다한 싸움을 끝까지 했는지...

며칠후 우연히 여자를 만났는데 일요일 아침의 격렬했던 싸움의 흔적은 어디에고 없었다.늘 그랬듯이 일에 지친듯한 피로한 얼굴로 나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얼굴이 머리에 남아있다.특히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여자의 눈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일요일 아침에 그들은 무슨 일로 그렇게 언성을 높히며 급기야는 손지껌까지 주고 받아야 했을까?

내가 아는 K씨는 생전 부부싸움을 안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그러나 K씨도 처음에는 여느 부부가 그러듯이 어지간히도 싸웠다고 한다.

얼마나 자주 서로 죽일 듯 싸웠댔던지 당시 철없던 아들이 '그렇게 싸워대면서 왜 사냐?차라리 이혼을 하지?'라고 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죽어라 싸워대면서 내린 결론은 단 하나,' 성장하면서 정립된 인간의 사고와 생활습관은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보통 부부의 싸우는 이유가 내 맘에 들지 않는 버릇이나 습관때문인데 거의 평생을 굳어온 버릇들이 아내나 남편의 잔소리나 충고로 고쳐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줄기찬 싸움과 잔소리로 어느정도 고쳐지기는 하겠지만 단지 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버릇이나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얼마나 긴 세월을 보내야 하며 서로의 가슴에 또 얼마나 큰 상처들을 내야 하나는 것을 그녀가 깨달았다고 했다.

싸움싸움끝에 설사 상대방의 버릇이나 습관이 고쳐졌다 한들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으며 싸우면서 서로의 가슴속에 남겨진 상처는 어떻게 치유하냐는 것이 K씨의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난 10년 전부터는 남편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K씨가 제일 질색한 것이 남편의 칠칠치 못한 생활습관이었는데 '남편이 지금껏 살아온 방식이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당히 방관하니까 절대 싸울 일이 없고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지금 6개월 째 집안의 목욕탕을 개조한다고 온갖 연장이며 집기들을 집안 가득히 늘어놓고 일만 갔다오면 뚝딱거리고 있다고 했다.

그전만 같아도 빨리 하라고 난리를 쳤을텐데 지금은 '1년 안에는 끝나겠지' 하고 맘 편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집안 가득 늘어진 도구며 가구마다 수북수북 쌓인 먼지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싸워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보다는 생활의 불편함을 조금 참는 것이 부부관계에 이익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란다.

일요일 아침, 차 안에서 격렬하게 싸우던 그 부부에게 K씨의 생각을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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