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한국 여성지에서 한 남자 유명인사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 유명인사에게는 입양해 키운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성인이 된 지금도 하루에 열 번씩 휴대전화로 지금 어디있냐, 뭐 하냐, 뭐 먹냐, 시시콜콜 확인을 한다고 했다.

기자는 그것을 유명인사가 아들을 무척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었다.

내가 기자였다면 반드시 아들에게 물어 봤을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하루 열 번의 전화가 온다는데 전화받는 게 귀찮치 않으세요,하고.

내가 보기엔 그것은 절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빙자한 집착이요,구속이며 속박일 뿐이다. 하루 열 번의 전화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모르긴 해도 그 아들은 휴대전화를 만들어 낸 사람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나도 언젠가 휴대전화를 만들어 낸 사람을 저주한 일이 있다.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였었다.

기차로 부산에 가는데 출발하자마자 앞좌석 여자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기차가 떠나기 전 다른 승객의 편안을 위해서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는 방송이 두 번이나 나갔는데도 말이다.

성질이 확 나는 걸 꾹꾹 참으며 얼른 통화가 끊나길 기다렸는데 겨우 통화가 끝나는 가 했더니 조금 후 또 전화가 울었다.

그 여자는 대전에 도착할 때 까지 자그마치 일곱 번이나 더 휴대전화를 걸고 받기를 계속했다.

차창 너머로 조용히 고국의 향취를 느껴보고자 없는 살림에 큰 돈 들여 새마을호 특실을 끊었던 나는 고국의 향취고 나발이고 '휴대전화 쓰지 말라는 방송도 못 들었냐' 고 그 여자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은 걸 참느라고 얼마나 심호흡을 했던지 나중엔 머리가 다 지끈지끈 아플지경이었다.

기껏 고등학교 동창모임에 가면서 누가 온대니, 안 온대니하는 수다를 떨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일곱 번이나 통화를 하는 그 여자를 보면서 나는 휴대전화를 만든 사람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휴대전화는 수다용으로 만들졌을까?

주위에서 휴대전화 가진 사람들의 통화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중요한 내용은 거의 없다. 거의 다 신변잡기식의 수다다. 특히 요즘은 가정용 전화보다 휴대전화 통화료가 더 싸기 때문인지 어딜 가나 휴대전화로 수다떠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도 수다떨기를 참 좋아하지만 전화로 하는 수다는 별로다. 휴대전화는 물론이요, 전화하는 자체를 참 싫어하는 나는 꼭 전해야 할 용건이 있을 때면 어쩔수 없이 전화를 하지만 안부를 전하기 위해, 수다를 떨기위해 전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전화하기 싫어하는 이런 성격 때문에 남편과 거의 인연이 끊길 뻔 하기도 했다.

처음 만나 데이트를 하면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가 전화를 잘 안하는 성격이다. 그러니 나한테 전화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만나고 싶거든 당신이 먼저 전화를 해라.

그랬는데 일 주일이 가고 이 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까워 오는데도 이 남자한테서 아무 연락이 없는 거였다.

이 인간이 내 전화번호를 잊어버렸나 싶어 내가 먼저 전화를 했더니 얼마나 반갑게 받던지.

알고봤더니 내가 마음에 들었지만 내가 전화를 안한다는 말에 너무너무 상심했단다. 자기가 싫어서 먼저 전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을 했다는 거다.

내가 먼저 전화를 안했으면 어쩔 뻔 했냐고 물었더니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여자한테 먼저 만나자고 할 용기가 없었으므로 내가 전화를 안했으면 자기도 절대 전화를 안했을거란다.

휴우~그때 내가 먼저 전화하기를 얼마나 잘 했던지 까딱했으면 겨우겨우 만난 신랑감을 놓칠뻔 했다.

오해가 풀려 데이트를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그에게 다짐다짐했다.

절대로 당신이 싫은게 아니다, 나는 그저 전화하는 게 귀찮고 싫을 뿐이다...

전화하기 싫어하는 성격은 결혼해서도 여전해서 결혼 10년 동안 남편직장으로 전화를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어쩌다가 용건이 있어 전화를 하면 그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냐고 화들짝 놀라기부터 한다.

내 성격을 아는 남편은 평소에는 별 군말이 없다가 내가 전화도 없이 늦는다던가 할 때는 차고 앞에까지 나와 있다가 닥달을 한다.

"사고라도 난 줄 알았쟎아. 불안해서 죽는 줄 알았네. 사람을 말려죽일 작정이 아니라면 이제 그만 휴대전화를 마련하지 그래?"

그럴 때마다 나는 느긋하게 대답한다.

"걱정마셔. 사고났다하면 제깍 연락할테니..한 미모하는 내가 어디 휴대전화 못 빌려 연락못할까 봐.... "

우리주위에서 그동안 휴대전화가 없었던 사람은 딱 세사람으로 K씨와 J씨, 그리고 나였다. 그런데 최근 J씨가 항상 대기상태로 있어야 하는 직장일을 잡으면서 어쩔수 없이 두어 달 전 전화를 장만했고 K씨도 지난 주 딸로부터 휴대전화를 생일선물로 받으면서 결국은 휴대전화 없는 사람이 나 혼자가 되었다.

K씨도 처음에는 딸한테 야단을 쳤단다.

"가게 아니면 집에 있는 사람한테 휴대전화가 무슨 필요있냐, 쓸데없는 짓 했다"

그런데 막상 전화가 있으니 여간 편한 게 아니라면서 나 보고도 이제 고집 그만 피우고 한 개 장만하라고 권한다. 옆에서 거든다.

요즘 휴대전화 없는 사람은 미개인보다 더한 원시인이라고...

미개인이라도 좋고 원시인이라도 좋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가진 휴대전화, 나는 앞으로도 절대 가지지 않고 혼자서, 혼자서 독야청청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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