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는 신문을 보는 즉시 다 갖다 버리니까 요 며칠전 신문이 없겠지?"

"잘 알면서 묻기는..그런데 왜요? 며칠 전 신문에 좋은 기사가 나오기라도 했어요?"

L씨가 전화를 해 며칠 전 신문을 좀 찾아 봐 달란다.

 

데이비스 대학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요세미티 산에서 실족사 한 한인학생의 추모행사에 관한 기사가 필요하다면서.

 

L씨는 그동안 미국신문, 한국신문에 실렸던 그 학생의 기사를 모두 스크랩해서 한국의 부모에게 전해 주었는데 이번 신문 기사도 한국에다 부쳐주려고 한단다.

최근에 받은 종합검진 결과 때문에 몸과 마음이 썩 편치 않다면서도 남의 일에 이렇듯 신경을 쓰는 L씨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동안 모아 부쳐준 기사로도 충분하겠구만. 부모가 정 기사를 읽고 싶으면 신문사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읽으면 되지."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읽는 것 하고 종이 신문하고 같니?그 신문 어디서 좀 구할 수 없을까? 잘 둔다고 두었는데 누가 쓰레기통에 버렸나 봐. 이를 어쩌지?"

전화기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공부하러 보냈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부모의 마음을 ,그리고 그 아들에 대한 것이라면 실오라기 한 개라도 소중하게 생각할 부모의 심정을 자기가 십분 이해한다며 한 밤중에 기사가 실린 신문을 찾아 봐 달라는 L씨.

L씨는 지난달 장례식에도 유일하게 혼자 참석했었다.

 

장례식장이 집에서 차로 왕복 여섯 시간이나 떨어진 곳이라 혼자 가기가 좀 겁이 났던 L씨는 그 전날부터 같이 장례식에 같이 가 줄 사람을 수소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평일이라서 그런지 같이 가 줄 사람을 끝내 구하지 못했고 그녀는 당일 혼자 운전을 해서 장례식엘 참석하고 왔다고 했다.

"요즘같이 비싼 기름값에 정성도 뻗쳤지, 그 길이 어디라고 여자 혼자 운전을 해서 갔다와요, 그래?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고맙다고 인사나 한대? "

 

인연이라면 같은 클래스에서 서너달 같이 공부한 인연 밖에 없다면서 나 같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사람의 장례식에 여섯 시간을 운전해 가지 않았을 것이다.

"타국에서 맞은 죽음이라 조문객도 없이 썰렁하기만 할텐데 나라도 참석해서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주고 싶었어. 그 학생이 공부도 특출했었지만 얼마나 성실하고 예의발랐던지,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좋아했었던지도 부모에게 전해주고 싶었고... 입장을 바꾸어 내 아들이, 내 동생이 그런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 왕복 여섯시간을 운전해 장례식에 참석하러 왔다면 얼마나 고맙겠니? 아들잃은 비통한 심정에 조금 위로가 되지 않았겠니?"

L씨의 마지막 말에 나는 더 반박하지 않았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라는 말....

"가만, 수요일 자 신문이었지?그 신문이라면 내가 아직 안버렸을 거요,우리집 차고에 있을 거야"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L씨는 우리집으로 오겠다고 전화를 끊었고 전화를 끊은지 10분도 채 안되어 모습을 나타냈다.

"신문을 찾아서 정말 다행이야. 이 기사를 부쳐주면 부모가 아들 본 듯 반갑겠지?"

헌 신문 한 장을 가지고 기뻐하며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졌다.

'어쩌면 저렇게 넉넉한 마음을 가졌을까?'

생판 모르는 남의 부모 마음까지 헤아리는 저런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L씨가 언젠가는 큰 복 받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L씨 代에 못받으면 나중에 자식 代에라도 받을 것이고 우선 L가 세상을 떠나면 L씨가 그랬던 것 처럼 왕복 여섯 시간을 달려 장례식장에 와 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다 불현듯 그런데 내가 죽으면,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 졌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 생각을 해봐도 왕복 여섯 시간을 달려 내 장례식에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물론, 가까이서 와 줄 사람도 기껏 열 사람이 채 넘지 않는다.

평소에 사람들한테 도움주고 잘 해준 게 없으니 다른 사람이 와 주길 바라는 건 꿈도 못꿀 것이고 그나마 친하게 지냈다는 몇몇 사람들은 내 장례식에 와 줄 것 같긴한데 그나마도 자신이 없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그 중 몇몇은 내게 섭섭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다.

 

 

내가 생긴건 두리뭉실, 맘좋게 생겼으면서 칼로 무 자르듯 냉정하게 남의 부탁을 거절하길 잘 한다고.

 

사람들이 보통 남이 부탁을 해오면 일단은 들어주고 나중에 불평을 하면 했지, 상대방 무안할까봐서라도 그렇듯 앞에서 대놓고 거절을 못하는데 나는 그 짓을 잘 한단다.

나한테 부탁을 했다가 거절 당한 사람들, 내가 죽으면 장례식장에 과연 와줄까?

 

죽고나면 그만인데 장례식장에 누가오던 말던 알게 뭐냐면 할말 없지만 내일 내가 죽을 것을 가장하고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그 사람이 평소 얼마나 건실한 삶을 살았으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는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숫자로 대략 가늠 잡아진다.

 

그런데 겨우 열 사람 남짓 참석한 장례식이라니, 생각만해도 쓸쓸하고 허허롭기만하다.

살아 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금, 내 장례식엔 누가 와 줄까 하는 무거운 주제 하나가 내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