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이었다. 한국에 사는 옛 고교
친구가 짧은 이메일을 보냈다. 그녀는 불쑥 “19일날 마드리드에서 만날수
있니?” 하고 물었다. 불과 일주일 후여서 “왜?” 하고 되물었더니 산티아고 순례하자고 했다. 열심히
웹사이트를 찾았다.
그때부터 산티아고 열풍을 맞았다. 9세기부터 순례자들이 찾는다는 길은 완전히 매혹덩어리였다. 산과 들판을 구비구비 돌며 자연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종착지는 예수님의 12제자중에 하나인 제임스 성인의 유해가 묻힌 성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이었다. 중세기에 건축된
웅장한 대성당의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전신에 이상한 전률이 흘렀다. 웬지 유럽의 대성당들을 찾아 가졌던 감동과 조금 달랐다. 이곳 토박이 친구에게 산티아고 순례길
걷고싶다 했더니 영화 ‘The Way’ 를 추천했다. 2010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순례길에서 삶의 묵직한 내용이 순화되는 과정을 보았다. 충동을 받았고 분명 나를 기다리는 순례길을
보았다.
한국에 사는 두 친구와 미국에 사는 두 친구. 단발머리 여고시절 친구 넷이 서로 부추겼다. “가자 얼른”. 낮과 밤이 다른 세상에 살지만 고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었다. 현실은 모두를 주춤이게 했다. 평소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지 않았고 또한 성인병들로 비실거리니 배낭메고 행군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더우기 집안 대사까지 살펴야하니 핑계아닌 이유들로 각자 어물쩍 거렸다. 솔직히 병원을 들락이고
약을 한움큼씩 먹으니 낯선 나라에서 변고를 당할까봐 두려워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았다. 늦은 가을부터 나는 준비한다며 틈나는대로 열심히 걸었다. 남편과 딸들에게 “봄에 꼭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다” 고 선언했다. 딸들은 응원했고 남편은 “걷지 못할걸?” 하며 묵살했다. 처음에는 프랑스 국경마을에서 시작하는 길 800 Km
전 구간을 걷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삐걱이는 무릎이 전같지 않았다. 친구들과 카톡으로 여전히 “함께 어디 가자” 대화는 계속했다. 걸어야하는 순례길이
아니라 스페인 남부의 항구도시에 가서 한달 휴양하자는 제안에서 슬로바키아의 류블라나 등 진지하게 여행지를 들먹거렸다. 그럴적마다 잊고 살았던 우리들의 나이가 정면에 나서는 바람에 모두 용기를 내지 못했다.
본격적인 봄이 되니 근질근질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계속 나를 불렀다. 마음을 잡고 프랑스에서 시작한 길의 마지막 115Km구간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배낭을 메고 걷는 것에 겁이 났는데 짐을 다음 지역 호텔로 매일 운송해주는 여행사도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함께 하지 않아도 혼자 떠날 각오를 했다. 여름이 되어 사람들이 많이 찾기
전인 5월 중순으로 출발 계획을 세웠다. 처음에는 “절대 반대” 하던 남편도 무리하지 않게 구간을 팍 줄여서 걷겠다니 물러섰다.
항공권과 일정을 정리하던 어느날, 한 친구가 이번에는 불가리아에 있는 수도원을 소개했다. 멋진 곳이지만 “나는 산티아고 행” 이라 답했다.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고 덤볐더니 순례길을 잘 걸을 확신이 생겼다. “내일보다 오늘의
내가 더 젊으니 출발한다” 며 친구들에게 나의 여행일정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애초에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하자고 초청한 친구가 전부터 배낭을 몇개 사고 떠날 준비했다며 곧바로 나의 마드리드 도착시간과
출발시간에 맞추어서 항공표를 구입했다. 다른 두 친구에게 “놀러가자!” 불렀지만 그녀들은 침묵을 지켰다.
욕심을 버리고 간단하게 개나리봇짐 하나 가져가자고
친구와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등에 짊어지고 걸을
필수품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아무튼 ‘먼 길 떠날
때는 눈썹까지 빼놓고 가라’ 는 조언을 철저히 지켰다. 내 등에 삶의
무게를 느끼는 여행이 될것 같아 두려움과 흥분에 잠을 설쳤다. 떠나기 2주 전부터는 등산화를 구입해서 신고 다니며 발에 적응시켰고 집안청소를 했다. 나 없는 동안
남편이 입을 셔츠도 다 데려 놓았다. 낯선 배낭여행의 설레임으로 일손이 가벼웠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나를 끌어당기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 순례길에 오르니 마치 돈 키호테가
된 기분이 들어서 집을 나서며 “Here I come Santiago” 를 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