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오즈의 마법사’ 에서 노란 벽돌길따라
걸으면서 집으로 돌아갈 소원을 이루어줄 에메랄드 성에 사는 마법사를 찾던 도로시처럼 우리도 노란 화살표를 따라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열심히 걸었다. 우리의 기도를 도와줄 제임스 성인이 그곳에 있었다. 포장된 길위나 나무등결, 담벽, 심지어 길가의 돌덩어리에도 그려진 노란 까미노 화살표는 힘들어 휘청이던 우리의
발길을 잡아 주었다.
매일 우리를 맞이하던 구비구비 오르락내리락 길과 전원풍경은
모두 아름다웠다. 곳곳에 무성하던 숲이나 들꽃들과 수시로 얼굴이 바뀌던 하늘, 그리고 예민한 교감을 나누며 함께 걸어준 새들에 감사했다. 간혹 바람의 소리가 유별나게
강했던 것은 내 속에 있던 묵은 찌꺼기들을 실어 가려는 탓이라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속은 긍정적인
생각들로 채워졌다. 솔직히 버린것보다 더 많은 것을 걸으면서 얻었다. 그리고 나이 먹어가면서 잃는 것들과 또한 얻는 것들을 손꼽아보는 동안 발 밑의 부드러운 흙은 복잡한 인생을 순하게 다스려 주었다.
판쵸 우비를 하루에도 여러번 입었다 벋었다 하며 햇살과
비를 묵묵하게 받아들이며 걷는 것이 주어진 과제였다. 그리고 일정한 거리를
지나면 길가에는 어김없이 산티아고 대성당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던 비석같던 이정표가 있었다. 타임키퍼 같던 이정표의
킬로미터 숫자가 내려갈수록 무엇인지 순례길에 숨은 메시지를 찾아야 하는 압박감이 조여왔고 아울러 순례길이 끝나가는 아쉬움도 커져갔다.
우리는 토요일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일요일을 대성당에서
보내기로 결정하고 하루에 8-9시간씩 걸었다. 무리를 해서 며칠 많이 걸었던 덕분에 토요일 오후 늦게 산티아고 시에 들어섰다. 그곳부터는 까미노 조개그림이 달라졌다. 단순하던 조개의 디자인이 짙은 청색과 노란색이 상큼한
얄삭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까미노 사인에 새롭게 기운이 쏟아났다. ‘기쁨의 언덕’ 을 지나고 멀리 도시가 보이는 순간 설레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겁던 발에 바퀴가 달린양 속도가 붙었다.
도시 입구에 산티아고 시의 지도가 그려진 안내판이
있었다. 대성당은 도시 안 깊숙이 있었다. 지난 며칠의 피로가 쌓여서 힘들어하는 친구를 뒤로하고 자석에 끌린듯 빠르게 대성당으로 향했다. 아마 젊었다면 배낭을 짊어졌어도 뛰었을 것이다. 시가지를 가로질러 신호등을 여럿 지나며 줄곧
뒤돌아 친구를 보면서도 내 몸은 계속 앞으로 나갔다. 성당이 나타날 길목쯤에서 내 흥분을 진정시켰다. 좋은 친구와 대성당을 함께 만나고 싶었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다가온 친구에게 “이제 다 왔어. 힘내” 라 격려하는데
지나던 어떤 한인 여자가 “아니요. 아직 멀었어요.” 했다. 20대의 미스 최는 며칠 전 도착해서 벌써 이곳 지리를 익혔다며 고도시의 휘어진 골목길을
돌아서 대성당 옆의 광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저녁 햇살에 눈부신 웅장한 대성당을 보고 숨을 삼켰다.
얼른 성당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배낭을 매고 성당에
들어갈수 없다해서 우선 까미노 증서를 받으로 갔다. 순례를 마친 많은 사람들이
웅성이며 줄서 있는 뒤에 우리도 섰다. 한참 순서를 기다렸다가 여권과 걸어오며 곳곳에서 도장을 받았던 크리덴샬을
보여주고 한인들이 순례길의 졸업장이라 부르는 증서를 받았다. 중세분위기가 물씬 배인 라틴어로된 증서에 분명
내 이름이 적혔다. 튜브를 사서 증서를 말아 넣었다.
가톨릭에 프란체스코회가 생긴 지 800년되는 해여서 대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성당에서도
800년을 기념하는 증서를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 주었다. 올해 받지 못하면 다시
100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곧장 그곳으로 가서 역시 여권과 크리덴샬을 보여주고 증서를 받았다. 프란체스칸 수도사가 증서와 함께 준 마른 꽃이 장식된 작은 카드에는 ‘주께 영광
(Gloria in Excelsis Deo)’ 이 적혀 있었다. 소중히 가슴에 안으니
전신이 떨렸다.
주말 관광객들이 많아서 대성당 주변의 호텔들은 방이
없었다. 하지만 순례길 내내 좋은 숙소를 구할수 있었던 축복을 받았던 우리는
이번에도 대성당 바로 옆 건물의 카페 3층에 방을 구했다. 방에 배낭을
내려놓고 대성당으로 향했다. 드디어 우리가 고대하고 찾아온 성인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