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성당안에 들어서며 언어를 잃었다. 훅하고 몰려온
경이감에 휩싸여서 순간적으로 발을 헛디뎠다. 십자가 디자인의 성전에서 하늘로 향한 높은 천정아래 천년의 세월을
견딘 신성함이 방문자를 제압했다. 더듬이며 제임스 성인의 유해가 안치된 성전아래의 지하방을 찾았다. 은빛 관이 뿜어내던 광채로 시간이 멈추어 있던 곳에서 나의 존재조차 잠시 마비되었다. 그리고 제단 높이 있는 제임스 성인의 동상 뒤로 있던 계단을 올라가 그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성경속의 인물이 실제로 다가옴이 두려웠고 한편 신비스러웠다.
그날 밤 숙소에서 은은하고 묵직한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친구와 함께 우리의 삶을 감사했다. 두 사람 다 발에 물집하나
없이 잘 걸어온 것도 감사했다. 일요일 아침을 먹고 바로 성당으로 갔다. 제임스 성인의 부름인양 강렬하게 나를 끌었던 대성당의 성전앞에 앉았다. 스며드는 햇살아래 신부님들이
드리는 아침기도를 따르며 깊은 행복감에 빠졌다. 이어서 장엄한 오전 미사에서 성령의 인도로 신과 인간의 교감을
느꼈다. 미사가 끝날때 쯤, 향이 든 거대한 향로를 8
사제들이 밧줄을 잡고 힘차게 잡아당기니 조금씩 향로가 좌우로 흔들리며 천정높이로 올라갔다. 은근한 향이 아름다운 찬송과 함께 웅장한 대성당 안에 울려 퍼지며 천상을 엿보는듯한 신기루 현상을 일으켰다.
받은 감동이 대단해서 다시 정오 미사를 보았다. 순례자들을 위한 정오 미사는 수 백명의 사람들이 몰려서 성당안은 발디딜
틈없이 꽉 찼고 앉은 사람들보다 선 사람들이 많았다. 신부님들도 대거 참여해서 단연 축제 모드였다. 미사 전에 안내자가 순례를 마친 사람들의 국명을 부르고 순례자들의 노고를 치하한 후에 순례자 몇 명이 간략하게 그들의
체험담을 나누었다. 낯선 언어가 낯설지 않았던 것은 느낌이 같았던 탓이리라. 이번에도 역시 미사 후에 향축성이 있었다. 하늘을 향해 오르는 향로를 빠져나온 향들이 순례자들의
땀냄새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정화시켜 주는듯해서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성당안의 작은 방들 중에 기도방은 이중으로 문이 있어서
관광객들의 소음을 차단시켰다. 그 방에서 기도 제목이 적힌
노트를 열어놓고 걸어오면서 기도했던 단편들을 모두 모았다. 얻으려고 구한 것이 아니라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니 나와 지인들이 받은 은혜가 파도처럼 몰려와 눈물이 되었다. 마침 그날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2주년 기일이었다. 어머니가 보고싶어 울컥이다가 기일이라 모였을 미시시피에 사는
동생들이 떠올랐다. 역시 어머니를 그리워할 동생들에게도 하느님의 자비를 비는데 갑자기 청아한 새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몇 사람이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을뿐 고요함만 있었다.
하루종일 성당안을 머뭇이면서 제임스 성인을 여러번
가까이 찾아갔고 대성당 내부 곳곳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보면 볼수록 작은 그림에도
보물같은 깊은 의미가 숨어 있었다. 오후 미사중에 한국어 찬송소리가 끼어들어 어리둥절했다. 옆에 있는 작은 방에 한인들이 잔뜩 모여서 미사를 보고 있었다. 비록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가톨릭 성지인 대성당에서 주교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인데 옆에서 따로 한국어 미사를 드리는 모국인들이 나와 참 다르다
싶었다.
이번 순례길에서 얻은 것이 많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행복함이다. 또한 살면서 필요한 것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배웠다. 나무보다 숲을 보는 안목을 키운 셈이다. 그리고 친구의 소중함을 재확인했다. 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지만 우리의 근본은 닮은꼴이었다. 한국에서 럭셔리한 생활하며 명품을 꽤뚫고 사는 친구와 미국 남부 작은도시에서 단순하게 사는 내가 함께
24시간 붙어다니며 서로 부족한 점을 메꾸고 보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지켜주며 각자 살면서 체득한 지혜를 나누는 기쁨도 많았다. 특히 범사에 감사하고 타인을 우선 배려하던 친구, 모든 일에 적극적인 그녀의 열정에 나는 탄복했다. 친구말처럼 우리는 여러면에서 완벽한 명콤비였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친구와 아쉽게 헤어진 후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하는데 흐르는 물이 떠올랐다. 구비구비 흐르다가 어떠한 장애를 만나도 적응하며 흘러가는 물의 자세가
바로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내가 갖고 싶은 삶의 자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