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텍사스에 있는 공군부대에 근무하던 시절부터 사귀어 온 지인 부부가 있다.
그들이 퇴직 후 몽고메리 근교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간혹 만나서 회포를 푼다. 그 아내가 편지를 보냈다. 친정부모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신문 스크랩을 보니 나에게 알려주고 싶다면서 복사를 해서 보냈다. 인디애나주에 있는 Terre Haute 라는 도시의 1951년 2월 15일자 신문기사였다. 한국전에서 부상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 아버지, Capt Quentin McNary의 스토리가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모국땅을 밟았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당시 미육군 대위였다.
1948년부터 일본에 주둔하던 그는 1950년 6월25일 한국전이 일어나자 바로 7월에 포항에 도착해서
한국전에 참여한 보병장교였다. 그는 미군이었지만 한국군 보병대대의 지휘관으로 북한군을 만주근교로 밀고 올라갔다가
중국인민군에 밀려서 서울로 후퇴했다. 그해 12월, 그는 부상을 입고 일본으로 후송되었다가 본국에서 치료받기 위해서 가족들과 함께 고향인 인디애나주로 돌아왔다. 사회 관심사였던 한국전에 참여했던 그를 지역신문에서 소개했다. 세계 2차 대전시 유럽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으로 미국 정부에서 군인들에게 수여하는 3번째로 높은 무공훈장인
은성훈장을 받았던 그는 한국전에서도 동성훈장을 받았다.
그때 6살이었던 지인은 그녀의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여해서 무엇을 했는지 몰랐다.
그녀는 집안에서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군기를 잡던 아버지가 두려웠던 성장기를 가졌다가 빛바랜 신문기사를 읽고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공훈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투에서 입었던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나이 62에 세상을 떠났다. 오래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는 재발견한 용감했던 아버지를 한인
이민자인 나에게 소개하고 싶어했다.
올 봄에 켈리포니아에 사는 친구가 찾아왔을 적에 그녀와
몽고메리 다운타운에 있는 명소 ‘올드 앨라배마 타운’에 갔었다. 고옥의 베란다에서 여러명이 둘러 앉아서 벤조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흥겨운 음률에 끌려서 가까이 다가갔다. 한 노인이 ‘한국전 베테란’이란 글이 쓰여진 모자를 쓰고 있어서 우리가 한국출신임을 알리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이든 음악인들 대부분이 퇴역군인들이라고 소개한 후 그는 자신의 한국전 체험을 상기했다.
끔찍하게 추웠던 한국의 겨울을 생각하면 지금도 으스스하다며 몸을 떨었다. 그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지난 4월 이곳에서 열렸던 DMZ사진전을 생각했다.
한국전의 이모저모와 척박하고 헐벗은 산야와 가난과 전쟁에 힘겨웠던 조상들 모습이 담겨있던 액자속의 정경을 분명 그는 떠올리고
있었다.
노병은 이어서 한국의 자동차회사가 몽고메리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일이 굉장히 기쁘다고 했다. 한국전 참전용사였던 그의
가슴 한 곳에 한국이 들어서 있었다. 자신이 밟았던 한국의 지역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쓰던 그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었다. 그는 우리 두 여자에게 1달러짜리 동전을 하나씩 주면서
행운을 빌었다. 2000년에 만들어진 아이를 업고있는 인디언 여인 사카가위아 얼굴이 있는 1달러 주화는 요즈음 제조되지 않는다. 이제는 희귀한 동전으로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고 보관하는
동전인데 그것을 우리에게 하나씩 준 노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참전했을 적에 헐벗고 굶주렸던 한인들에게
자신이 가졌던 물품을 나누어 주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수 십년이 지난 아직도 그의 의식에
남아 있었던 반사적인 행동은 한인들에게 무엇인가 나누어 주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2차 대전의 상흔이 미처 아물기도
전에 일어난 한국전에 수 십만의 미군들이 태평양 건너 한국전에 투여되었다. 미국 50주 어느 곳에든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이 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사망자들과 부상자들,
그리고 실종자들. 그들의 가족, 친지,
이웃 등에 상상을 초월하는 영향을 끼친 한국전이 일어난 지 64년이 지났다.
전쟁을 겪었고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슬그머니 세상을 떠난다. 전후에 태어난 세대는
사는데 바빠서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자연히 전쟁에 관한 일들은 젊은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났고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이 되었다.
오늘은 한국군 보병대대를 지휘했던 지인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와 1달러 동전에 행운을 얹어준 노병에게 고개를 숙인다.
한인 이민자로 나의 모국을 지켜준 그들의 은공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