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메리에서 혼자 외롭게 살다가 병으로 고통을 받던 한인여자가 있었다. 투병중인 그녀를 만난 후부터 가슴 한쪽에 묵직한 아픔이 고였다. 새해 첫 주말에 그녀의 죽음 소식을 듣고 마음이 심난했다. 생명이 하나뿐인 것이 슬펐다. 남의 나라에서 외톨이로 버티다 세상을 떠난 그녀의 편안한 안식을 빌다가 9 생명을 가졌다는 고양이를 부러워했다. 사람도 한번씩 제각기 다른 생명을 살아 갈 수 있다면 실수나 병을 고쳐가며 번번이 새롭게 행복찾아 살텐데.

 

사실 선호하는 동물은 고양이가 아니라 개다. 감성이 민감한 사춘기에 미국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고 오랫동안 두려움에 떨었다. 목 매달려 죽은 고양이가 갑자기 눈을 떠는 착각과 죽은 시신의 머리에 앉은 검은 고양이의 핏발선 눈빛이 상상되어서 끔찍했다. 그때부터 고양이를 싫어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피할 정도로 고양이를 기피하던 나에게 신은 짖궂었다. 아파트에 혼자 살던 작은딸이 외로움을 달래려고 입양한 것이 고양이였다.

 

그후 고양이를 잠시 돌보아 달라던 딸의 부탁을 받고 “절대 반대” 펄쩍뛰던 나를 남편의 “오케이”가 눌렀다. 개와 눈 맞추고 살던 시절 우리집에 온 고양이 로키는 찬밥신세를 받았다. 앙숙인 두 동물은 매일 집안을 설치고 다니며 자리다툼을 했다. 젊은 로키는 노골적으로 개를 약올렸고 헉헉이며 상대하던 늙은 개는 나의 전폭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개가 세상을 떠나자 로키는 개를 찾아 집안을 다니며 애처럽게 울었다. 그리고 개를 잃고 허전해하던 남편의 빈 가슴에 안겼다. 하루종일 집안 어딘가에 꽁꽁 숨었다가 저녁에 남편이 퇴근해 올때쯤이면 나타나 그가 들어올 문을 향해 앉아 기다리던 로키와 남편은 빠르게 친해갔다. 가슴에 묻은 개들을 그리워하는 나에게서 로키는 멀찍이 서성였다. 동물도 사람 마음을 잘 읽는다는 것은 개들과 소통하면서 알았다.

 

얼른 딸이 독립해서 고양이를 데려가길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로키와 정이 많이 들었다. 작년 여름 막상 딸이 로키를 데려가겠다고 찾아오자 남편은 “절대 반대” 하며 내주지 않았다. 이제 로키와 영원히 함께 살게 되었으니 친해보려고 마음 먹었지만 도무지 로키와는 느낌이 나누어지지 않았다. 납죽 엎드려 발톱을 숨긴 로키의 푸른 눈빛에는 찬바람이 있었다. 마치 칼 샌드버그 시인의 시 ‘안개’에서 조용히 고양이 발에 앉아 말없이 항구와 도시를 바라보던 안개처럼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로키의 존재는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편안히 서로를 묵살하고 지냈다. 어느날부터인가 로키는 당당하게 나의 의자를 차지했고 나는 소파로 밀렸다. 통통하게 살찐 거구의 로키는 햇볕 잘드는 곳에 퍼지고 누워지내며 나를 외면했다. 저녁에 나보다 먼저 침대로 오르는 로키는 남편의 가슴에 길게 눕기를 좋아하고 아예 우리 침대위에 잠자리를 틀었다. 그리고 로키가 화장실의 싱크대에 올라가면 남편은 뒤따른다. 물그릇의 물보다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로키를 남편은 즐겁게 해준다. 언감생심 주객이 전도되었다.

 

연말에 플로리다주 남단인 키웨스트에 있는 소설가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에서 우리집 로키와 닮은 녀석을만났다. 반가워서 불렀더니 녀석은 슬쩍 눈을 뜨고 나를 아래위 훑어보고는 도로 눈을 감았다. 그 집에는 52 마리의 고양이들이 1 에이커의 집과 정원을 온통 장악하고 산다. 헤밍웨이의 침실과 응접실, 심지어 그의 서재까지 자유롭게 들락이는 고양이들 대부분이 6 발가락을 가졌다. 6 발가락을 가진 고양이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고 좋아했던 헤밍웨이 덕분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방문객들의 소음에도 꿈쩍않고 제자리를 지키던 고양이들 중에 로키를 닮은 녀석을 보고 좋아했으니 은연중에 나도 로키와 정이 들었다.

 

오늘은 로키가 컴퓨터 앞에 앉은 나의 무릎에 올라 앉기를 시도한다. 의자를 테이블 가까이로 바짝 들이대어 공간을 없앤 나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고양이를 지독히 싫어했던 내가 로키와 6년을 함께 살면서 변한다. 의자를 약간 뒤로 밀고 공간을 만들어 주었더니 무릎에 냉큼 올라와 앉는다. 먼 세월을 한바퀴 돌아 다시 원점으로 온것 같다. 따스한 체온을 주는 로키와 악수한다. 고양이와 새로 사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