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파리의 명성지 물랑루즈 클럽에 간 적이 있었다. 날렵하고
아름다운 무희들의 춤을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즐기는 남편 옆에서 나는 꼬박꼬박 졸았다. 현란한 무대의상에
눈이 부셨고, 늘씬한 다리들로 쉴사이없이 풀쩍이던 미인들의 관능적인 율동이 처음에는 흥미로웠지만 좀 보다보니
비슷해서 나한테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저것 좀 봐” 하며 계속 나를
깨우던 남편은 결국 유명한 ‘캉캉춤’을 혼자 즐겼다.
그후 남편은 오락을 제대로 즐길줄 모르는 나의 촌스러움을 놀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교사회에서
성장한 나는 나름대로 즐기는 취미생활이 있다. 여기저기 낯선 곳 찾아다니며 자연경관과 색다른 풍습을 구경하고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주변 환경에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또한 그들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나에게는 화사한 무희들의 쇼보다 더 재미있는 오락이다.
세계적 명성의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뉴욕 외에도 플로리다나 뉴멕시코, 애리조나
주등 전국 여러 지역에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곳이 많다. 이곳 앨라바마에도 몇 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곳은 사철 기후가 원만하고 바다 바람이 살살 간지럽히는 모빌베이에 있는 작은 도시 페어홉
(Fairhope)이다. 지형적인 천연의 조건도 매혹적이지만 지역인들이 남부의 독특한
환경을 잘 보전했다. 그리고 겨울을 보내려고 그곳을 방문했던 지식인들이나 예술가들이 날씨와 환경에 반해서
아예 눌러 살면서 그 지역의 문화에 개성을 보태서 더욱 매력적으로 가꾸었다.
인구 1만6천의 소도시 페어홉은 앨라배미안들이
노후를 보내고 싶어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사철 이어지는 많은 문화행사는 외부인들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나는 그곳의 다채로운 가게들과 맛있는 빵집과 특이한 서점을 좋아한다. 글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작은 서점은 옛 풍취로 아기자기하고 정겹다. 서점에 딸린 커피숍의 커피에는 지역 작가들의 이야기가
녹아서 분위기기 약간 비현실적인 맛이 배여있어 좋다.
남쪽으로 가면 버릇처럼 나는 페어홉을 찾는다. 튤립과 봄꽃들로 산뜻한 치장을 한 거리는
완연한 봄기운으로 상큼했다. 북부에서 내려온 스노우 버드들이 다운타운의 거리를 서성였지만 나는 즐겨 들리는
가게들로 빠르게 움직여 다녔다. 한 화실에서 남부의 정서를 고스란히 그림에 담은 화가의 카드를 잔뜩샀다.
지인들에게 남부를 소개하는데 그 카드는 매력적인 매신저이다. 그리고 화실마다 들리며
유무명의 화가들이 여러 매체로 자연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작품들을 즐겁게 보았다. 특히 남부인들의 생활이
묘사된 작품들은 끈적한 정으로 나를 끌었다.
한 가게에서 여러 크기의 놋그릇들 앞에서 내가 주춤이자 주인 여자가 다가왔다. 그녀가
옆에 있던 나무바통을 잡고 놋그릇의 위와 옆을 살짝 치니 종소리를 닮은 깊은 음이 울렸다. 티벹에서 스님이
직접 주물해서 만든 ‘노래하는 그릇’ 이라 했다. 허허벌판 거친 광야에 울려 퍼지던 높고 낮은 명쾌한 음이 남부 바닷가의 한 가게안을 꽉 채웠다. 나도 나무바통을 잡고 크기가 다른 놋그릇들을 가볍게 노크하듯 두드리며 티벹에서 이런 그릇들을 두드려서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스님과
이 그릇들을 만들어 멀리 앨라배마로 보낸 스님을 생각하는데 주인여자가 옆에 진열된 물건들을 소개했다. 저개발국
31나라에서 130 장인들이 만든것을 중간거래상없이 직접 사 와서 판다는
그녀는 자신의 가게는 공정 거래상 (Fair Trade Market)이라 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가게 안을 천천히 돌았다. 월남산
티세트는 좀 투박했지만 동양의 멋이 있었고, 타일랜드나 에콰도르에서 만든 귀걸이와 반지는 산지의 색다른 문화로
반짝였다. 그 가게에는 또한 7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들의 특산물이 있었다.
독수리 문양의 은장식 목걸이를 감탄하는 내 뒤에서 한 손님이 자신은 벨리 댄서라며 춤 출적에 팔에 감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수 있는 커다란 디자인의 팔찌를 찾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 주인이 보여주는 팔찌를 내 팔목에 걸쳐 보았다.
나의 작은 팔목에서 2-3 인치 크기의 화사한 팔찌는 가게의 불빛아래 형형한 색깔로
돌면서 나를 어지럽혔다.
앨라바마의 예술가마을 페어홉에는 지역산만 아니라 외국산 작품도 공존했다. 그리고
그것을 창조한 각 나라 장인들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던 상냥한 주인덕분에 나는 지구가족들의 흥미로운 사연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오락 취미는 바로 이렇게 혼자 자유롭게 다니며 새로운 지식을 얻는 재미를 즐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