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엔가 몰두한다는 것은 굉장히 행복한 일이다. 그 무엇이 직업이 아니라 취미생활이라면 더 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잠시 유행따라 가지는 버릇 같은 취미가 아니라 수 십년을 꾸준히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은 보통의 열정으로는 어림없다.
그동안 우표와 성냥곽, 술집에서 맥주잔 아래 깔아주는 밑받침인 코스터와 그림엽서 등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었다. 그것들이 슬그머니 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자 수집하는 지인들에게 기꺼이 주었다. 그러나
커다란 컨테이너에 가득 차 있는 그림엽서는 아무에게 줄 생각이 없다. 지구촌 여러 곳을 여행하며 욕심내어
모은 아름다운 그림엽서들은 훗날 하나씩 꺼내어서 추억을 회상할 목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우습지만 간혹 그런
적이 있었다. 어떤 지역이 그리우면 그림엽서를 꺼집어 내어서 그곳을 방문한 기억을 떠올리면 새삼스럽곤했다.
미시시피 웰컴 센터에 전시된 홍보물 중에서 ‘War & Peace’라는 글귀가 시선을 끌었다. 동명의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가 쓴 장편소설을 떠올리다가 그것이 한 개인 소장품의 전시관 제목이어서 호기심이 일었다.
한가지 취미에 꾸준히 집중하지 못했던 나에게1930년대부터 시작한 취미생활을 세상을
떠날때까지 계속한 토마스 몬티(Thomas F. Monti) 씨는 대단히 존경스러웠다.
‘War & Peace’ 전시관이 있는 웨이브랜드 (Waveland) 라는 작은 도시는 내가 묵는 빌록시에서 별로 멀지
않았다. 바다를 끼고 있는 90번 도로 서쪽으로 30 마일이 조금 넘는 거리다. 전시관이 개인 소유라 아침에 전화로 방문 약속을 하고 천둥 번개로
요란스럽고 비가 왔지만 찾아 나섰다. 옆으로 바다를 보며 운전하면 태풍만 아니라면 언제나 상큼하고 즐거운
나들이가 된다.
얼핏 지나가도록 한적한 도로변에는 전시관에 대한 사인이
없었다. 찾아간 주소에 있던 가게의 옆길로 들어갔더니 뒤에 창고처럼 생긴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 입구 위에 전시관 사인이 있었다. 반갑게
맞아준 사람은 몬티씨의 막내아들인 조 (Joe)였다. 애석하게도 몬티씨는
4년 전에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는 그의
아버지가 생전에 모델 용품을 조립하던 작은 책상과 의자를 보여주었다. 책상에 흩어져 있던 공구들이나 페인트
튜브들도 아버지가 사용하던 그대로라고 했다. 마치 몬티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듯 했다.
젊은 시절 뉴올린스에 있던 조선소에서 일을 했었고
그리고 항공기 제조공장과 교량 건설에 기여했던 몬티씨는 직장에서 배운 기술을 그대로 취미생활에 활용했다. 그는 오랫동안 집에서 모형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벽에 선반을
만들어 보관하였는데 2005년 태풍 카타리나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자
그의 세 아들이 나서서 이 건물을 물색하고 내부를 개조해서 아버지께 선사했다. 소장품들을 분류하고 전시하며
기쁨에 넘친 몬티씨가 직접 ‘War & Peace’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전시에 사용하는 많은 군용 장비들에 평화시에 사람들이 즐기는 자동차와 어선들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건물 안에는 여러 방이 있었다. 각 방마다 바닥에서 천정까지 사방으로 선반이 꽉 들어차서 크기와 종류가
다른 온갖 모델들을 분류 전시했다. 입구 오른쪽 방에 있던 차량들을 둘러본 후에 군함들과 어선의 방을 거치고
군용차들과 탱크들을 지나 우주선과 항공기 전시방까지 돌면서 가진 느낌은 경외심이었다. 전 세기부터 5대양 6대주와 우주를 누비던 온갖 교통 수단들이 총 집합되어 있었다. 모두 4,000여점이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소장품이었다. 각 모형은 세밀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실체의 모습을 가졌는데 ‘Honey, I shrunk the kids’ 영화에서 사용된 레이저 빔으로 축소시켜 놓은 착각이 들었다.
이탈리안 이민자의 후손인 몬티씨가 하나 하나 정성을
들여서 조립하고 완성시킨 소장품은 놀랍게도 세계 역사와 기계 문명의 변천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컴퓨터 이전의 세상이 있었다. 그가 평생 쏟았던 열정의 결정체들을 보려고 전국 여러
지역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이 전시관을 찾아온다. 특히 군복무를 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탔던 군용
차량이나 항공기, 전함들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감회에 젖는다고 했다. 모형 만드는 취미의 우물을 판 몬티씨와 그가 남긴 막강한 유산을 타인들과 나누며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지키는 몬티가족을 만난
기쁨을 체험하고 전시관을 나서니 비가 그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