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아제바라아제”. 갑자기 머리속에 이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또한 내 기억 어디에서 튀어 나온 말인지 궁금했다. 부엌에서 리빙룸까지 몇 발자국을 빠르게 걸어서 노트북을 열었다. 불쑥 나타난 이 말은 나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한국말도 사용하지 않는 우리 집안에서 웬 주문인가.

 

인터넷으로 이 말이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로 중생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나가자는 말씀’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자 가자 더 높은 곳으로 가자’ 라는 이 말의 깊고 아름다운 뜻을 되새기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하!”하고 아침에 받은 이메일 하나가 떠올랐다. 애틀란타 여성문학회 회원이었던 이연희씨의 1주기를 맞아 그녀의 납골당을 찾은 몇 회원들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이 원인이었던것 같다. 이연희씨는 불교신자였다. 가만히 ‘아제아제바라아제’를 여러번 읊으면서 그녀를 추모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대학시절 남한의 여러 사찰을 찾아 다닌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자 어머니는 불교에 의지하셨다. 그리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시려고 한동안 전국 유명 사찰을 찾아 다니셨다. 나에게는 ‘엄마찾아 삼만리’가 아니고 솔직히 ‘엄마찾아 산구경’ 했었다. 강원도에서 남해까지 크고 작은 사찰을 찾아서 법당에 엎드리던 엄마를 찾아갔다. 유신문제로 대학이 휴교를 자주 한 탓으로 시간이 있었다.

 

산 좋고 물 좋고 더욱 경관좋은 사찰들에서 밤을 지내고 새벽을 맞는 것이 좋았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던 해인사 같은 곳 보다는 오히려 오대산 높이에 있던 작은 암자와 남해의 벼랑옆에 있던 암자에서 엄마와 멀찍이서 혼자 보낸 시간들이 나 자신을 성찰시켰다. 산속을 아무리 헤매어도 길 잃을까 두렵지 않았고 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면 바다 건너 먼 이국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새벽을 깨우던 법당의 풍경소리와 정신을 깨우던 목탁소리에 묻어오던 불경의 말씀들이 은연중에 내 속에 몇 자락 떨어져 있었나 보다. 아제아제바라아제. 성모경을 외우는 나에게 불쑥 떠 오른 이 말에 초연해진다. 사람속에는 그 사람이 태어난 후부터 보고 자란 모든 상황이 파일로 저장되어 있다더니 내 속에는 얼마나 많은 파일이 어떤 상태로 보전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옳은 생각만 가지고 좋은 것만 보며 좋은 일만 하며 살았다면 내 속의 파일도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살아온 세월에는 온갖 잡다한 모든 일들, 추한 일들까지 다 보고 겪어 왔으니 내 속의 파일은 총 천연색일 것이다. 하지만 적재적소에 이렇게 찾아주는 말처럼 어떤 환경에서든 헤쳐날 수 있는 지혜까지 주니 고맙다.

그리고 나이가 드니 변화를 본다. 그동안 살면서 가졌던 나쁜 기억들은 걸려져 나가고 단지 좋았던 기억들만 표면에 떠오르는 것이다. 더불어 만나는 사람들 마다에서 선함과 그들의 장점을 많이 보게 되는 일이다. 오늘은 진실로 ‘아제아제바라아제’를 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