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다시 과거로 곤두박질 친다. 미국 사회를 분리시키는 가장 큰 요소는 여전히 인종 카드이다. 화합하려고 10보 전진했다가 20보 퇴보하는것 같다. 어떤 일에든 일단 ‘인종차별’ 이라는 단어가 첨부되면 사건의 본질이 변색된다. 그리고 모두가 격한 감정에 휩싸여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를 찾느라 바쁘다.

 

작년 2월 플로리다 주에서 17세의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이 백인 자경단원의 총에 살해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정치가들과 언론의 부추김으로 인종 갈등을 부각시켰다.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찬반 의견을 쏟아내며 사건을 확대시켰고 재판과정과 날카로 비판들이 언론매체를 장악한 바람에 정작 중요한 다른 사건들은 그늘속에 가려졌다. 정당방위였다한 조지 지머먼이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그 판결은 사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묵은 체증인 인종 갈등의 귀신을 불러왔다. 전국에서 일어나는 항의시위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한 젊은 여자를 생각했다.

 

얼마 전 몽고메리에서 세상을 떠난 흑인 여자이다. 집앞의 포치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가 쏜 총알에 희생당한 그녀는 3명의 어린 자식을 뒤에 남겼다. 그녀의 죽음은 올해 이곳의 30번째 희생자로 지방신문에 실렸다 잊혀지는 억울한 삶이었다. 만약 그녀에게 총을 겨눈 사람이 백인이었다면 누가 그녀의 원통함을 항변해 주었을까? 남부생활 저변에는 흑백으로 나누어지는 T자 길이 있다. 그 중앙에서 양쪽을 기웃이는 버릇에 익숙한 나의 가슴에도 썰렁한 바람이 일었다.

 

어느 일요일 식당에서 하얀 옷을 입은 흑인들을 많이 보았다. 처음 한 가족이 들어왔을 적에는 별로 의문이 일지 않았다. 그저 온 가족이 흰색 옷을 통일해서 입고 교회에 갔었나? 했다. 뒤이어 도착한 남녀 손님들이 역시 온통 하얀색의 옷에 하얀 신발까지 신었다. 그들이 단체손님이 아니라 각각 다른 테이블에 앉는 것을 보니 궁금증이 일었다. 검은 피부를 감싼 옷의 새하얗던 색깔이 순수했고 유난히 빛이 나서 눈이 시렸다. 남편과 내가 입은 색깔있는 옷은 그들의 옆에서 민망하도록 세속적이었다.  

 

나의 의문은 다음날 신문에 해답이 있었다. 흑인들의 단합대회인 ‘Maafa (Ma-Ha-fa) 의식’이 전날 몽고메리 다운타운에서 거행되었다. 흰 옷을 입은 흑인들이 예전 노예시장이었던 장소에 모여서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쇠사슬에 목과 팔다리가 묶여서 짐승취급을 받으며 대서양을 건넜던 선조들이 겪은 참혹함과 그후 250년 이어진 노예생활의 비통했던 과거를 상기했다. 더불어 모든 험난한 고초와 수모를 버텨온 흑인들의 끈기와 인내심을 찬양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축하했다. 함께 손을 잡고 앨라바마 강으로 걸어가서 들고 간 꽃을 강에 던지며 세상의 평화를 구했다. 그리고 3 세대 여자들이 과거와 현재 또한 미래를 상징하는 춧불을 밝혔다. 흑인들은 예술과 문화를 통해서 쓰라린 과거에서 치유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흑인 학자이며 작가인 마림바 아니 (Marimba Ani) 박사가 1988년에 발간한 책에서 인용된 ‘마하파’ 라는 용어는 아프리카 스왈리 지역의 말로써 ‘재난’의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세계 2차 대전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견주어 이 단어를 1990년대부터 흑인학살의 의미로 사용한다. 해마다 전국 여러 곳에서 지역의 특성을 살린 마하파 행사가 열리는데 몽고메리에서도 올해 두번째로 열렸다.

 

엄청난 세월동안 이어진 잔학한 역사에서 흑인들이 물러받은 유산은 강렬한 피해의식이다. 더욱 직접 차별을 받았던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으니 과거는 현재속에 공존하고 있다. 흑인들이 가슴에 품고있는 상흔에는 일시적인 처방이 없다. 어떤 흑인 학자의 말처럼 피해의식은 7세대가 지나가도 잊혀질까 말까이다. 그러니 불미스런 과거의 가해자나 피해자의 후손들은 모두 피해자들이고 사회 전반에 스며있는 인종 요인은 근래의 이민자까지 모두가 단합해서 함께 풀어야할 어려운 과제이다.

 

비록 흑인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사회환경의 변화를 보았지만 이번에 보듯이 여전히 인종갈등은 민감하게 피부밑에 존재한다. 트레이번 마틴의 희생이 미국을 더욱 평등한 사회로 성숙시킬 계기로 변하고 ‘마하파 의식’이 흑인들만이 아니라 전 국민의 화해를 구하는 의식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