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반가운 지인이 방문해서 노동절 긴 연휴를
함께 보냈다. 남편은 아침 일찍 그와 골프치러 떠나고 나는 밀린 일 처리하다가
중단하고 집을 나섰다. 바다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린 시골가게의 창문에서 ‘오크라 페스티벌’에 대한 광고를 보며 올해는 꼭 찾아보리라 마음 먹었던 기억이 났다.
여름의 막바지인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이었다. 몽고메리에서
별로 멀지 않은 라운스 카운티의 벅빌 (Burkville) 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한적한 남부의 들판이 이어지고 간혹 아담한 집이 몇 듬성듬성 보였다. ‘오크라
페스티벌’장을 가는 길이어서 높이 자란 오크라 들판을 찾아 두리번 거리느라 손으로 쓴 작은 안내판을 지나쳤다.
돌아서 찾아가며 인근에 가게 하나 없는 척박한 시골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궁금했다. 조용한 골목길로 들어섰더니 행사장 옆집의 넓은 뒷마당이 주차장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창이 넓은
모자를 쓰고 차에서 내려 막 깍은 상큼한 잔디를 가볍게 밟았다.
낮으막한 두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테이블들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앞집과 옆집의 뜰에도
물건들이 진열된 텐트가 몇 보였다. 한 집의 뒤뜰에 세워진 작은 텐트에서 밴드의 반주에 맞추어서 두 여가수가
열창하고 있었다. 단촐한 잔치에서 가수들이 지역의 자랑인 솔 뮤직 (soul music)으로 객들을 반겼다. 그 앞에 앉을 의자가 없어서 뜰을 서성였다. 음악을 즐기며 진열된 물품을 살피는 동안 더위는 전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수공예 악세사리와
그림들은 완전히 그곳의 분위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풍경이었고 자질구레한 물품들은 얼핏 시골장을 연상시켰다. 나무아래 그늘에 앉은 몇 사람이 무심히 나를 지켜 보았다.
이웃들이 모여서 가지는 블럭파티 같은 푸근함으로 전체
분위기가 아기자기했다. 카운티 보안관 몇 사람이 이웃들과
환담하며 동양여자가 혼자 어슬렁거리며 텐트를 기웃거려도 낯설어 하지 않았다. 벌써 여러해 이 축제가 열려서
외부 방문객들에 익숙했다. ‘오크라 페스티벌’은 2000년에 흑인 주민들의 여름 파티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대가족 파티의 분위기를 잘 지키고 있어서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기회였다.
내 앞에는 더운 날씨와 척박한 들판과 농사꾼들이 화합하여 이룬 한 여름의 남부 정경이 펼쳐져 있었다.
해마다 ‘오크라 페스티벌’을 열면서 지역인들은
자부심을 키웠다. 잠자고 있던 지역의식을 깨운 셈이다. 조금씩 홍보가
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면서 예전의 비포장 도로도 이젠 포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 축제가 방문객을 끌어들여
지역문화를 소개하고 경제개발의 활성화에 한몫을 해서 앨라배마 관광지도에 타운의 이름이 올랐다. 열악한 환경의
시골이 이룬 성과를 생각하며 음식 텐트를 지나 오크라 피클된 것을 사고 또한 신선한 오크라도 샀다. 텐트를
지키는 사람들이 느긋하게 여름 오후의 평온함을 즐기는 정경에 내 걸음도 느릿느릿했다.
떡갈나무 아래 그늘에서 폭이 8인치쯤 되는 작은 팬에 튀김옷을 입힌 오크라를 튀기고 있던 여자앞에 섰다.
구수한 향에 침이 고였다. 나의 주문이 튀겨지길 기다리며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50대 나이의 이곳 출신인 흑인여자는 현재 조지아주에 산다고 했다.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아서 직장을 찾아 옮긴 지가 벌써 10년이 되었다. 오크라 페스티벌에
참석하러 고향을 찾는다는 그녀는 1인분의 오크라를 튀기기 위해서 최소한 4-5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조금도 서둘지 않았다. 돈을 벌기보다 오히려 토속적인 오크라 맛을 제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훗날 퇴직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미 도시맛을 본 자신에게 고향은 가끔 찾아와 즐기는 향수로 남길것이라
했다. 내년에도 꼭 찾아오라는 그녀에게 나도 내년에는 누군가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했다. 혼자서 즐기기 아까운 축제였다. 뜨거운 태양아래 더욱 뜨거운 시골사람들의 훈훈함을 얻고 돌아오며
남편에게 맛보여주려고 남겼던 오크라 튀김을 혼자서 다 먹고 입을 닦았다.
하지만 일요일 저녁 우리집에서 가졌던 일본인들과의
디너 파티에서 나는 감칠맛 나는 오크라조림을 바비큐 옆에 올렸다. 모두 맛있게 남부의 맛을 즐겨서 좋았다. 그리고 한 여자에게 오크라 피클 병을 하나 주었다.
오크라 페스티벌에서 나누어 받은 정을 이렇게 나누고 사니 나의 남부생활은 한가한 이곳 풍토를 닮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