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뒷뜰에 감나무를 한그루 심었다. 착한 감나무는 얌전히 뿌리를 내리고 자라 맛있는 단감을 키워서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주었다. 감이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어릴적 시골의 친척집을 방문하면 집집마다 앙상한 가지에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렸던 정경을 떠올렸다. 그것은 나의 가슴에 훈훈한 고향집을 찾아주었고 삶을 뒤돌아 보게한 기회도 되었다.

 

감나무를 애지중지 키우면서 가을이 되면 두고온 고향과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나름의 행사를 치르는 버릇이 되었다. 열매 하나에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붙여주었던 해는 차마 그 열매를 먹지 못했다. 남부 작은 도시에서 주홍빛 찬란한 빛으로 영근 감은 신기하게도 떠나간 옛 사람들과 엉킨 추억의 실타래를 풀어주는 실마리였었다.

 

아주 어렸을 적의 기억이다. 우리집 대청마루 위에 줄줄이 매달려 있던 감들이 있었다. 어머니가 열심히 껍질을 깎아서 끈으로 묶은 감을 주렁주렁 연결시켜 처마 밑에 매달았다. 오렌지색 속살이 조금씩 꼬득하게 말라가면서 가벼워진 감들은 햇볕을 받고 바람에 미약하게 흔들리며 풍경소리를 내었다. 손이 닿는대로 우리 형제들이 빼 먹는 바람에 정작 곶감이 될때까지 남아있던 감이 별로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뒷뜰의 감나무를 보면 저절로 어린시절과 고향에서의 추억이 많이 따라왔다.

 

그러나 감이 붉어지는 시기부터는 해마다 새들과 전쟁을 치루었다. 열매에 붉은 기운이 돌면 감을 도난하는 새들 때문에 감나무의 중간 높이까지 넓직한 네트로 나무를 빙 둘러싸서 새들의 접근을 막았다. “함께 나누어 먹자” 하고 윗가지에 열린 과일들은 새들의 몫으로 넘겨 주고 아래 가지의 과일은 사람몫으로 보호했다. 감나무는 아래 위 가지에 맛있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서 새도 사람도 기쁘게 해주었다. 늦가을에 감을 수확하면 미시시피 친정식구들에게 들고 갔고 또한 이곳에 사는 지인들과도 나누어 먹었다. 집에서 키운 과일은 가게에서 사먹는 과일보다 훨씬 달콤했다.

 

올 여름에도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과일들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다. 초록빛 열매의 크기가 갓난 아이의 앙징스런 주먹만하자 나무를 한바퀴 돌면서 과일의 숫자를 헤아려 보았다. 50까지 세다가 워낙 달린 과일이 많아서 숫자 세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감들이 자라서 붉게 익을 가을을 기다렸다.

 

비바람이 심하게 이곳을 강타한 초여름 어느날 감나무도 함께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다. 허약한 잔가지들이 많이 부러져 나갔고 알토란같은 열매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과일이 많이 매달려서 힘에 겨웠는지 모르지만 바닥에 뒹구는 많은 수의 과일에 안타까웠다. 그러나 9월 초에는 나무에 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당황했다. 아직 설 익어서 새들이 쪼아먹을 상황도 아니었다. 무성한 푸른 잎들만 꼿꼿한 나무를 돌아보니 내 몸에서 기운이 빠져 나갔다. 가을을 데려왔고 고향의 추억을 맛보여 주던 열매였다. 사라진 과일들과 더불어 다시 잃어버린 고향이라 우울했다.

 

평생 소식을 하셨고 음식에는 욕심을 내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일년 전부터는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잘 드셨다. 특히 우리집 감나무에서 수확해간 잘 익은 감을 드렸더니 “그것 참 맛있다” 하시며 맛있게 드시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그후 잘 익은 감을 보면 가슴이 무겁게 눌리고 어머니가 보고싶어 목이 메였다. 어머니가 곁에 계시지 않아 허전한데 과일 하나 잡고 있지 않는 감나무도 고향과 그리운 사람들을 추억할 기회를 앗아갔다.

 

사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로 친정 가족들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아픈 배를 쓰다듬어 주시며 ‘내 손은 약손’ 하시던 어머니의 약손을 잃어버린 자손들은 냉정한 세상살이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와중에 어김없이 찾아온 계절은 나의 빈 가슴을 찬 기운으로 채우며 더욱 외롭게 한다.

 

주말에 찾아간 애틀란타의 한인 마트에서 감을 잔뜩 사왔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순리에 적응하신 어머니의 삶에 더 이상 슬프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가을의 과일을 지인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고향을 찾아갈 새로운 방법을 강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