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고 만지며 느끼는 체험은 여행의 매력이다. 지난달 캘리포니아 항구도시인 몬터레이에서 흥미로운 역사의 흔적을 보고 전세기 사람들의 체취를 물씬 느꼈다.

 

우리 부부는 여행지에 국방부 산하 숙소가 있으면 즐겨 이용한다. 미국 전역과 해외 여러 나라에 있는 육해공군 해병대 부대나 군 휴양지에는 숙소가 있다. 저렴한 경비로 안전한 곳에 묵고 우리가 현역이었을 적에 가 본적이 없는 육해공군 부대들을 잘 알게 되어서 좋다. 더욱 근사한 일은, 부대의 숙소는 언제나 빈방이 있어서 쉽게 방을 구할수 있다. 길여행을 하다가 일정을 바꾸어도 불쑥 찾아가 쉴수 있으니 군복을 오래 입었던 특혜를 톡톡히 보고 사는 셈이다.

 

몬터레이를 찾았을 적에도 그랬다. 그 도시에는 해군 숙소가 두 곳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적에는 어둠이 도시를 덮었던 늦은 밤이었다. 담장이 높게 쳐진 해군대학원의 입구에서 국방부 아이디 카드를 보여주고 들어갔다. 오래된 떡갈나무와 사이프러스, 소나무들이 깊게 그림자를 드리운 부대안은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 할로윈 분위기로 음침했다. 지나다니는 차량하나 없어서 숲이 우거진 길은 더욱 적적했다. 부대밖 가로등이 밝은 길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우선 불이 켜진 건물을 찾아 갔더니 다행히 해군 숙소인 허만 홀 (Herrman Hall)이었다.

 

프론트 데스크를 지키던 친절한 직원은 넓고 우아한 내부에 휘둥그레한 나를 환영하고 방 키를 주었다. 뒤따라 들어온 남편도 여지껏 우리가 다녔던 군의 숙소와 다른 웅장한 시설에 놀람을 금치못했다. 3층 우리가 묵을 방의 문에는 ‘Admiral Ulysses Sharp, Jr., Jul 2, 1934 – May 15, 1936’ 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4성 제독이 묵었던 숙소는 높은 천정을 가진 넓직한 방으로 가구에도 품위와 위엄이 있었다.

 

구경부터 하자고 방을 나서서 곳곳을 다니며 본 고풍스런 고가구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손으로 조각된 나무로 장식된 천정이 무척 아름다웠다. 높은 기둥을 따라 들어선 그랜드 볼 룸은 유럽의 어떤 왕궁에서 본 무도회장을 닮았다. 한쪽 벽에 타일로 장식된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며 과거 볼 룸에서 일어났던 일화들을 상상해보니 재미있었다. 그리고 지하의 바/식당 벽에서 ‘USS Gray’ 라는 팻말을 보고 우리 이름을 가진 해군 함정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다시 놀랐다.

 

다음날 본격적으로 예전에 ‘호텔 델 몬트’로 명성을 떨친 숙소와 주변 환경을 두루 살펴보았다. 낮에 보는 정경은 오랜 세월의 이끼가 묻어 운치가 있었다. 호텔에 얽힌 흥미로운 스토리에 끌리다보니 전세기로 돌아가 호텔손님이 된 착각이 들었다. 1880년 6월10일, 철도산업으로 거부가 된 찰스 크록커가 태평양변 항구도시 몬터레이에 최고의 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호텔을 짓고 문을 열었다. 서부 개척이 한창이던 그당시는 관광산업이 전혀 없었던 시절이었다.

 

서부에 유혹받은 부유한 유명인들이 열차를 타고 미시시피강을 건너 황량한 서부를 지나 태평양 항구에 있는 호텔 델 몬트를 찾았다. 호텔은 19세기 후반, 낚시와 사냥, 테니스, 승마, 폴로 필드와 경주장, 유럽풍 장미정원과 식물원에 1897년에 개장된 골프 코스까지 누구에게나 어필되는 완벽한 오락시설을 갖춘 스포츠 왕국이었다. 처음 조경된 126 에이커에 주변의 땅을 보태고 17-마일 드라이브 코스를 마련하며 총 2만 에이커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바닷가 리조트였다. 호텔 델 몬트는 미국 사교계의 중심지로 4명의 역대 대통령과 세계 지도자들, 그리고 작가, 화가, 배우등 예술가들과 유명인들의 인기 휴양지였다.

 

목재로 고딕식으로 건축되었던 우아한 호텔 건물은 두 번의 화재와 지진에 파괴되었지만 1926년에 이국적인 스페니쉬풍의 콘크리트 건축물로 재건되었다. 그러나 전쟁과 불경기를 거치면서 호텔 델 몬트도 변화를 맞았다. 2차 대전 후 교육장이 필요한 해군이 1947년에 호텔을 사서 1951년부터 해군대학원을 운영하며 세계 60개국에서 오는 외국군인들과 미 해군장교들을 교육시킨다.

 

리조트로 시작한 호텔은 교육장으로 변해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 한때 호텔 델 몬트에 속했던 지역들은 페블 비치 골프 코스나 몬터레이 반도의 관광지로 개발되어서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는다. ‘호텔 델 몬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한 개인의 비전은 선명하게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