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들과 한 집에 사는 일이 솔직히 두렵다.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같은 기분이 하루에도 여러번 나를 사로 잡으니 오래
전에 무심히 읽고 지나갔던 글 하나가 섬광처럼 뇌리에 떠올랐다.
로즈 물라 (Rose Mula)씨가 쓴 ‘The Stranger in My House’ 라는 에세이를
찾아서 다시 읽었다. 나이든 자신의 생활을 들여다 보며 쓴 그녀의 글은 재치와 유머가 있다.
예전에는 웃고 지나갔지만 이번에 읽으니 웃음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또 다른
자신과 숨바꼭질하며 생활하는 일상사는 요즈음 나에게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평소에 거울을 보지 않지만
오늘은 거울앞에 섰다. 나 자신을 바로 보고 싶었다.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확인하려니 초로의 낯선 여자가 흐릿하게 마주 보았다. 그녀의 흩어진 시선에서 냉냉한 기운이 전해왔다.
3-40년은 고사하고 10년 전의 나와 너무나 모습이 다른 여자를 만나니 덜컥 겁이
났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우리와 함께 사는
낯선 사람들을 불평했다. 우리집에는 절대로 낯선 사람들이 없다고 남편은 강하게 우겼다.
귀신조차 없다고 고집피우는 그의 표정이 재미있어서 웃다가 밥을 코로 넘길뻔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펫 스토어에 들러서 어항에 키우는 물고기의 항균제를 샀다. 며칠
전에 틀림없이 샀는데 찾아도 없어서 다시 산다며 투덜거렸다. 집에 돌아와 어항 근처를 살폈더니 펫 스토어
쇼핑백에 든 항균제가 어항아래 케비넷에 얌전히 있었다. 이것 보라며, 낯선 사람이 숨긴것 아니냐고 했더니 남편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로즈씨가 맞았다. 낯선 사람들은 특히 남편에게 짖궂은 장난을 피운다. 남편이 나보다 심장이 더 약함을 아는것 같다. 약병이나 자잘구레한 물건들을 여기저기로 옮겨놓는
바람에 남편은 보물찾기 하듯이 매일 지갑과 전화기나 서류들을 찾아 집안을 다닌다. 제자리에 있지 않는 물건을
찾아 조용히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나보다 요란법석하게 집안을 흔드는 남편의 반응을 더 재미있어 하는것 같다.
오래 전 직장생활 할적에 나의 사무실 벽에는 스케치된
그림이 하나 붙어 있었다. 벙거지를 쓴 후줄근한 복장의
늙은 남자가 바이얼린을 켜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은 나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공동묘지에
묻힌 사람들 모두에게 사연이 있듯이 나를 찾아온 사람들도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왔다. 그당시는 업무가 많아서
정작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면 그 그림을 앞세우고 소소한 불만들을 걸러내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 자신은
영원한 젊음인줄 알고 살다가 나의 생활에 끼여든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노인을 보는 안목이 바뀌었다. 노인들이
살아온 세월의 지혜를 배웠어야 했는데 그들의 관점을 구식이라 밀어부쳤던 잘못을 어떻게 용서받나.
새해 첫 주말에 BBC 뉴스에서 ‘할머니 수출,
Exporting Grandma’라는 기사를 읽었다. 세상에서 가장 복지국가라는
스위스에서 나이든 부모를 스위스에 있는 양노원이 아니라 타일랜드로 보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였다. 경제적인 부담과 양노원의 노인학대도 고려한 후에 늙고 병든 노인에게 더 좋은 돌보임을 주는 동양의 먼 나라로 부모를 보내는 자식들의
마음에 이해가 갔다. 그리고 그들의 윤리의식에 질문을 던지기 이전에 8천 마일 떨어진 언어와 문화가 낯선 외국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의 현실에서 나의 미래를 보았다.
언젠가 동생이 그랬다.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미국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이라 했다.
나이든 부모를 동토인 알래스카로 데려가 그곳에 떼어놓고 오는 한인 동포들이 있다고 했다. 현대판 고려장이다. 자식에 버림받고 추위에 떨며 외롭게 살아갈 한인 노인에 견주면 일인당
3-4명의 간병인들이 24시간 돌보아주는 타일랜드로 간 스위스 노인은 오히려 행복하다.
더욱 치매환자라면 친절한 이방인의 세상에서 무리없이 적응하며 노후를 보낼수 있을것 같다.
오늘 밤에도 우리집에 함께 사는 낯선 사람들이 바이얼린을
킨다. 조금은 씁쓸하고 조금은 부드러운 선율이 잠을 설치게 한다.
이왕 함께 살아야한다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도록 낯선 사람들이 협조해 줬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