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했다. 한국말을 하는 여인들의 모임에서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나누는 한인들의 생활방식과 취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모처럼 한인 여인들과 만나 둥근 테이블에 둘러 앉아 점심을 나누며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누군가가 ‘몽촌’ 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미안하지만 물어 보았다. 한국의 사회 변화가 빠르고 신조어가 워낙 많아서 대화의 반은 알아듣고 반은 갸우뚱하며 지나가지만 나 사는 지역을 칭하는 말이라 확인하고 싶었다. 이곳에 이주해온 한인들이 오래전부터 몽고메리를 ‘몽촌’이라 부른다며 설명해준 여인은 오히려 나의 무지에 놀란듯 했다.

 

그리고 그들이 거론하는 여러 명품과 한국의 실상에 대한 대화를 듣다가 슬그머니 뒤켠으로 쳐졌다. 무엇이든 유행따라 해보지 않았다. 그동안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것보다 나를 의식하며 살았다. 발전의 도로를 달리지 않았고 꾸부정한 시골길을 좋아했다. 하늘을 가리는 고층건물이나 번잡한 도시의 화사함을 피하고 낮으막한 집들과 황량한 벌판을 선호했다. 도시의 소음보다 시끄러운 귀뚜라미들이 반가우니 나는 변화한 현재의 모국이 많이 낯설었다. 마치 의식의 이방인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삶의 질이 높고 환경과 시설들이 살기에 좋다는 바다 건너 먼 나라는 나에게서 더욱 멀어져 있었다. 일처리로 다운타운의 사무실을 돌면서 나의 머리속에서는 여전히 한국과 몽촌의 생활을 견주었다. 결국 실없는 일이라 생각되어 피식 웃고 그만두었다.

 

그날 저녁 석양이 무척 아름다웠다. 넓은 하늘에 흩어진 구름이 남부 걸프만을 연상시키는 지도를 그렸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물살처럼 오렌지빛이 검붉은 피빛으로 변하는 정경에 몰두해서 오른편으로 길을 바꾸어야하는 것을 잊고 그냥 서쪽으로 황홀한 하늘을 보며 계속 운전했다. 목적지를 한참 벗어나고 하늘이 검게 변하자 아차하고 정신을 차렸다. 되돌아 오면서 이렇게 사는 나의 현실을 깨달으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70년대 중반 고국을 떠날 적에 가슴에 품고온 소박하고 정이 많았던 고향사람들과 아기자기했던 산촌은 내 가슴에 있다. 그리고 익숙해진 남부 작은 도시의 생활도 나의 하루에 있다. 사람은 환경에따라 변한다더니 모국만 아니라 나도 과연 많이 변했다. 오랜 세월 앨라배마의 ‘몽촌’에 정들이고 살았더니 고향이 따로 없다.

 

고대 그리스 신화를 설명하던 어떤 교수가 여자는 natural이고 남자는 cultural 이라 했다. 빠르게 변하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바다 건너 모국의 풍토를 cultural로 지적할 수 있다면 ‘몽촌’에 사는 나는 natural이 아닐까 싶다. 자연스럽게 ‘몽촌에 살으리랐다’가 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