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에 앨라배마에 눈이 내렸다”며 놀랍다고 노래 불렀다. ‘앨라배마에 별들이 떨어지다 (Stars Fell on Alabama)’ 노래의 가사를 재치있게 바꾸어서 부르던 여자는 직업이 연극배우이다. 사실 1833년 11월, 유성우가 비오듯 앨라배마에 쏟아졌다. 사랑에 빠지면 눈앞에 별들이 반짝인다고 하지 않는가. 그처럼 환상적인 사랑을 앨라배마에 떨어졌던 별들의 신비로움과 연결시킨 사랑의 노래는 1930년대 작곡되었다. 재즈 전성시절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를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특히 루이 암스트롱과 빌리 홀리데이를 떠올리는 이 노래를 북부에서 내려온 여배우가 간들어지게 폼잡고 불렀다.

 

앨라배마와 인연이 깊은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자서전적 소설 ‘위대한 개츠비’ 연극공연이 끝난 늦은 밤이었다. 많은 관객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아쉬워 쉽게 극장을 떠나지 못하는 단골 관객들이 분장을 지우고 나온 배우들과 스탭들이 뒤풀이하듯 벌리는 카바레로 향했다. 연극장 한쪽에 있는 블랙 스완 바에 웅성웅성 모인 사람들중에는 낯익은 지인들이 많았다. 작년부터 오프닝 쇼가 끝나면 카바레가 열리는 관습이 만들어져서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모인다.

 

배우들은 큰 무대위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열연하며 화끈하게 뿜었던 열기를 작은 무대로 옮겨왔다. 그리고 격했던 감정을 부드러운 재즈로 달래고 피로를 풀었다. 무대위에서 연기로 본 개츠비의 진정한 사랑을 이번에는 노래로 들었다. 너는 나의 삶의 의미여서 나의 모든 것을 너를 위해서 바친다라는 헌신적인 노래들이 이어졌다. 은빛 코걸이가 유난히 반짝이던 스탭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Fever’를 열창하자 그의 뒤 벽장식인 초생달에 걸린 별들이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젊음은 진실로 아름다웠다.

 

남부에서 눈 내리는 것을 보니 고향이 그립다는 뉴욕커는 뉴욕시를 찬양하는 시를 낭송했다. 잠시 몽고메리에 공연차 머무는 연극인들의 외로움이 가까이서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가 그리운 고향을 가진 나그네들이었다. 지인들과 작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포도주를 홀짝이던 나도 멜랑콜리한 분위기에 빠졌다. 슬픈 연극의 뒷맛이 가슴 깊숙이로 침전되었다.   

 

미네소타 출신인 스콧이 몽고메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여자는 18세의 아름다운 젤다 세이어였다. 앨라배마 대법원 판사의 딸로 미와 재능을 겸비한 그녀는 가난한 작가와 사랑은 했지만 결혼은 거부했다. 낙담해서 떠나간 그가 쓴 소설 ‘This Side of Paradise’가 크게 성공해서 명성과 부를 얻자 젤다는 그와 결혼했다. 그들은 뉴욕과 유럽을 다니며 화려한 삶을 살지만 스콧의 다음 소설들이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하자 재정적인 궁핍에 시달렸다. 알콜중독자가 된 스콧과 신경쇠약으로 고통받던 젤다가 마지막으로 함께 살았던 집이 몽고메리에 있다. 현재 그 집은 ‘스콧과 젤다 피츠제럴드 기념관’ 이다. 그 기념관에는 한 시절 재즈풍을 일으키며 불꽃처럼 살다가 비운의 결말로 세상을 떠난 예술가 부부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스콧은 그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허황대고 물질적인 여자의 이기심까지도 사랑한 남자를 그렸다.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노력해서 부를 축적한 남자의 자만심이 희귀하다. 사랑하는 여자의 실수조차 자신이 막아주고 죽임을 당한 개츠비의 삶은 사랑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는 바로 지고지순한 한 남자의 사랑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해는 1925년 이다. 작가의 사후에 유명해져서 미국 문학의 정수로 인정받았고 학교에서 필독 도서로 선정되었다. 2014년, 아직도 이 소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세월에 영향을 받지않는, 한 남자의 맹목적인 사랑의 순수함이 아닐까 싶다.

 

연극은 개츠비를 죽인 남자가 자살하는 순간 막이 내렸다. 진실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된 개츠비를 추모하는 재즈 음악에 흥겨운 남편은 연극보다 카바레가 더 재미있다고 좋아했다. 우리는 다재다능한 연극인들이 아낌없이 보여주던 사랑의 찬가에 도취되어 밤이 깊어감을 잊었다. 카바레 같은 인생살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아름답게 사랑하며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자는 겸허한 자세가 되었다. 적당히 취해서 휘청이며 극장을 나서니 밤안개가 극장을 둘러싼 공원에 자욱했다. 부드러운 자연의 신비가 사랑에 취한 사람들의 귀가 길을 푸근하게 인도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