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주 카니어스(Conyers)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
(Monastery of the Holy Spirit)을 찾았던 날은 떠나는 겨울과 찾아온 봄이 자리바꿈을 하느라 느리게
흐느적였다. 1944년 켄터키에서 내려온 21명의 수도사들이 맨손으로
이룩했다는 성지를 몇 년 전부터 찾아보려고 벼르다가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흐리고 추운 날씨에 간혹 빗방울도
섞였지만 기대감이 커서 흥분도 컸다.
2년 전에 새로 건설된 헤리테지
센터에서 20분정도 수도원의 역사와 수도사들의 생활에 대한 비디오 안내를 받았다. 조지아주의 깊은 시골에 와서 수화로 의견을 나누며 노동을 하던 수도사들을 둘러싼 자연도 그당시는 언어를 잃었을것 같았다.
이어서 86세인 수도사가 손님들의 질문에 답해 주면서 그가 입은 수도복의 용도를
알려주었다. 흰 제복에 에이프론 역활의 후드 달린 겉옷의 검은 색깔이 무거웠다. 후드는 추위를 막아준다고 했다.
2천년 이어온 수도원의 전통적인
환경도 세월따라 변했다. 일반인에게 접근금지였던 수도원이 이제는 방문객을 맞이하고 수도사들의 삶을 살짝 보여준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남자들이 세상을 등지고 모여서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는 금욕수행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생의 근본인 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청빈한 생활, 자연속에서 흙과 가까이 살며 기도와
명상으로 일생을 보내는 삶이 고행으로 보이지 않았다. 철이 없었던 시절, 더우기 신의 존재를 몰랐던 시절에 수도원과 수녀원에 사는 사람들이 멋져 보였던 생각이나서 혼자 피식 웃었다.
수도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을 천천히 돌면서 모든
길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이어짐을 보았다. 원인과 결과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는 기록에는 지나간 사람들이 남긴 업적이 두텁게 수도원의 기반을 잡아주고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흘러도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땅을 거쳐갔지만 세상 역사의 중심에는 불변의 신이 존재했다. 신의 마스터 플랜에 아옹다옹
사는 나의 존재가 기여하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어서 처음 이곳에 온 수도사들이 수도원을 일으키는
동안 거주했던 헛간에서 그들의 과거 생활을 엿보았다. 그리고 현재 그들의 24시간 일상을 간결하게 조목조목 보여주는 차트를 보면서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새벽 4시에 시작하는 하루가 억겁으로 이어지는 높은
담너머의 생활에서 행복을 찾으려다가 한쪽 벽을 장식한 거대한 수도원의 사진에 적힌 질문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여긴 왜 왔소? (Why have you come here?)’
나의 첫 대답은 “글쎄요” 였다. 그리고 5시간 수도원에 머물면서 이것저것 보고 느끼면서 속으로 줄곧 내가 수도원을 찾은 이유를
생각했다. 수도원이 가진 신비의 기운을 얻고 싶었다. 신에 대한 미흡한
사랑에 영성의 불을 지피고 싶었고 천연의 환경에서 기도와 사색을 하며 평안을 얻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지만 대답에는 미흡했다.
정오 조금 지나서 수도사들이 손수 콘크리트를 날라
지은 고딕형 성당에서 기도 시간이 있었다. 앞 제단쪽의 수도사들과
떨어져 방문객들은 뒷자리에 앉았다. 보이지 않는 선명한 경계가 수도사들과 세속인들을 분리했다.
신전에서 확연히 들어난 두 사회상에 나의 의식은 따갑게 잡혀 있었다. 성당 옆의
얕으막한 언덕 아래로 목련과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그 사이에 핀 수선화들까지 수도사들을 닮아 탄성을 삼키고
침묵하고 있었다. 그 뒤로 가벼운 봄바람이 멈춘 호숫가에서 만난 욕심 많던 오리들은 세상사람을 닮아서 요란스러웠다.
성당안에서 처럼 침묵과 소란의 공존이어서 신비로웠다.
수도원장의 지휘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수도사들이 세상의
백지장을 맞들어 이룩한 수도원의 오늘은 기적같은 현실이었다. 그들은 직접 피정지도를
하고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수확한 생산물로 제조한 상품들을 기념품 가게에서 팔았다. 수도사들이 기도를 하며 노동한 결과인 꿀과 잼을 여럿 샀다. 수도원의 맑은 정기가 수도사들의
손을 통해서 우리 가족에게로 전해지는 축복을 받는듯 기뻤다.
머리가 희끗한 수도사의 뒷모습이 꼿꼿한 것은 그는
발걸음의 방향을 아는것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요한 수도원을 떠나면서
‘여기 왜 왔소?’ 라던 질문에 대답을 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신과 사람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배우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