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옛 친구와 그들만의 대화를 나눌 동안 나는 겉도는 3번째 바퀴로 투명인간이었다. 그들이 나누는 주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잠시였고 대부분은 상상의 날개를 펴서 이런저런 공상을 했다. 특히 어딜 가든 만난 친절한 지역인들에게 말을 걸어서 그들의 스토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하루는 켄터키주에서 오하이오 강을 건너 신시내티 다운타운 동쪽에 있는 ‘마운트 아담’지역을 찾아갔다. 좁고 가파르게 경사진 비탈길을 지나며 자동차의 뒷자리에 앉은 나의 마음이 불안하게 들썩였다. 그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에덴 공원’ 어디쯤에서 차에서 내려 공원의 푸름에 섞였다. 봄의 정기를 마시는 기분이 좋았다. 나지막한 산등성이의 벤치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웠고 그들이 보는 오하이오 강 건너 멀리 보이는 작은 도시도 정겨웠다. 우리는 산 중턱에 있는 신시내티 미술관에서 오후를 보냈다. 거대한 피노키오 조각상이 맞아준 입구에서 제각기 보고 싶은 전시실로 흩어졌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느긋하게 많은 고정 전시물과 특별전 등 동서고금의 볼거리 작품들을 즐겼다. 작은 도시의 미술관에 명작이 많은 것은 예상 밖의 기쁨이었다.

미술관을 나와서 남편과 그의 친구가 예전에 즐겨 들렸다는 먹거리 거리로 찾아갔다. 전세기에 조성된 마운트 아담 지역은 좁은 길과 계단이 많아 휠체어로 자유롭게 다니기 어려웠지만 두 남자는 갈 곳을 알았다. 우리가 주문한 음료수와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던 웨이터의 양쪽 팔에 새겨진 강한 색조의 문신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그에게 문신이 상징하는 의미를 묻자 물꼬가 트였다. 30대 후반인 브랜돈 스콧 페리는 내 기억 멀리서 죽은 듯 잠잠한 장소 하나를 회생시켰다. 66번 국도!

오래전 텍사스에 살 적에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도로다. 동부 시카고에서 서부 산타모니카까지 8 주를 지나며 이어지는 장장 2,448마일 (3,940km) 국도는 1926년에 공식적으로 완공된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도로다. 서부 개척시절부터 조금씩 마련된 도로가 연결되어서 지나는 지역 곳곳에 옛 흔적들이 많다. 특이한 환경과 분위기를 가졌지만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뒷길로 밀려났다.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으니 자연히 도로 사정도 나쁜 곳이 많고 숙소나 식당도 드물어 1985년 공식적으로 폐쇄됐다. 하지만 옛 것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찾으면서 주정부들과 지역인들이 도로를 복원시켜서 역사적인 관광명소로 새롭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미국의 자연환경을 색다르게 맛볼 수 있는 66번 국도 자동차여행을 남편은 찬성하지 않는다.

브랜돈은 할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자 충격을 받았다.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완치를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66번 국도를 걷기로 했다. 그가 먼 거리 도보행군에 나섰다는 말에 나의 호기심은 불꽃으로 튀었다. 배낭 하나를 메고 황막한 대평원을 타박타박 걷는 남자를 상상하니 석양으로 사라지는 구부정한 그의 뒷모습이 떠올라 키득 웃음이 나왔다. 그의 여정이 궁금해서 계속 질문을 했다. 외롭게 걷다가 지친 그는 결국 자전거를 구입해서 도로 횡단을 마친 후 그의 영육에 강력한 영향을 준 과정을 팔에 문신으로 새겼다. 왼쪽 팔에는 66번 국도 도로표시판과 휑한 황야의 정경이고 오른쪽 팔에는 그 거리를 지나며 가슴으로 흘린 눈물을 상징한다며 큰 눈동자 하나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림이다. 자신이 어떤 체험을 했는지 두 팔에 새긴 문신을 보며 늘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고 했다.

다행히 그의 할아버지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생존해 계셨다며 그는 기도의 파워를 강조했다. 단순한 길을 지나며 평소에 가졌던 편견을 벗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돌아온 후에는 사회정의를 돕는 여러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절실히 ‘66번 국도’를 여행하고 싶었다. 하늘과 맞닿은 황량한 들판을 운전하는 자유로움은 완전한 유혹이다. 도중 곳곳에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독특한 명소들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신선할 것이다. 옆에서 열심히 서로에게 몰입한 남편과 그의 친구를 보니 나도 마음 맞는 옛친구와 함께 Mother Road로 소문난 그 도로를 여행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