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스위트 홈!”초가삼간이라도 내 집이 좋다. 매일 잠자리를 바꾸며 지내다가 집에 돌아오니 감각이 휘청거린다.
그리고 단순한 나의 스토리를 살다가 타지에서 보고 들은 남의 스토리에 취해서 일상의 버릇조차 비틀거린다.
이번 여행은 좀 달랐다. 일정을 정하고 세부적으로 목적지의 숙소를 예약해 놓고 출발하던
버릇을 따르지 않았다. 5년 전, 우리 부부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었다.
세상의 멋진 곳들만 선호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나라인 미국의 50주를 죽기
전에 다 찾아 보자는 것이었다. 그때 남편은 벌써 31주를 봤고 나는
26주를 봤다. 나머지 주들을 방문하는 일은 우리가 꼭 실행하고 싶은 목적이 됐다.
그후 기회를 만들어서 보지 못한 주들을 하나씩 찾아 다녔다. 동북부에 몰린 주들을
돌고 나니 리스트에 남은 주는 중서부의 오클라호마, 캔사스, 네브래스카,
와이오밍, 아이다호, 몬태나,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아이오아 9주였다.
이 주들은 앨라배마에서 먼 지역이라
한꺼번에 다 방문하는 방법을 궁리했다. 각
주에서 하룻밤이라도 자려면 시일이 충분해야 하는데 직장을 다니던 남편이 별로 호응을 하지 않고 미뤘다. 올
4월에 남편이 퇴직하자 “여름에 장거리 도로 여행을 하자”고 제안했다. 선뜻 동의하지 않던 남편이 혼자라도 떠나겠다는 나의 고집에 마지못해 동조하자
우체국에 우편물을 보관시키고 신문배달을 잠시 중단시켰다. 정확히 언제 출발하고 언제 돌아온다는 일정없이 형편
되는 날 집을 떠나 중서부 방향으로 가면서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그러니 실제 여행
준비는 간단했다.
마침 한국에 사는 옛친구가 다니러
와있는 조지아주에 사는 그녀의 딸네집이 우리의 첫 목적지가 됐다.
친구와 그녀의 가족과 반가이 해후하고 그녀의 딸이 요리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시작이 좋았다. 그 좋은 운은 지나는 곳마다 우리와 함께 했다. 일단 주에 들어서면 방문자 안내소에 들러 지도와 정보를 얻었다. 보고 싶은 곳은 샛길로 빠져서
봤고 지역인이 추천한 식당은 일부러 찾아가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적당히 멈출 지역을 정해서
숙소를 찾았다. 한참 관광철이라 국립공원 근처 호텔은 만원이어도 우리는 큰 어려움없이 방을 구했다.
중부의 대평원을 지나면서 방향을
조금 바꾸어서 덴버에 들렀다. 그곳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가꾸며 사는 대학 친구는 불쑥 들린 우리를 백만 불짜리 미소로 환대해줬다. 친구의 삶을 엿보고 덴버의
다운타운을 활개치고 다니며 함께 멋진 하루를 보냈다. 세월은 우리가 서로에게 편안함을 주도록 모두에게 친절했다.
남편과 교대로 운전하며 처음에는 CD와 NPR 방송을 들었지만 목적지인 9 주를 다니는 동안에는 라디오를 틀지 않았다. 눈 앞에 나타나는 정경에 몰두하니 다른 오락이 필요 없었다. 더구나 고속도로의 속도제한이 켄사스주에서
75마일로 오른 것이 와이오밍주에서 80마일로 뛴 바람에 날개에 바람이 붙었다.
한적한 몬태나의 도로에서도 속도를 내어서 신나게 달렸다. 광야를 질주하며 마치 서부
개척자들이 말을 타고 평원을 달리는 기분을 냈다.
열흘쯤 되는 날 남편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돌았다. 그때부터 내가 긴장했다.
무리하지 않고 쉬엄쉬엄 일정을 조절해서 낮에는 멋진 자연의 절경에 아이들처럼 흥분하다가 저녁 먹고 호텔에 들어서 바로
잠을 잤다. 어느 날 사우스다코타의 한 소문난 살롱에서 저녁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남편이 거듭 “집에 가고 싶어”했다. 원하지 않던 장거리 도로여행으로
지친 남편의 얼그러진 표정은 나를 당황시켰다. 다음날부터 국도로 빠져서 둘러보던 지역의 구경거리는 가능한
피하고 하루의 운전 거리를 줄였다.
근 3주에 걸쳐서 18주를 구비구비
돌고 온 거리는 5,600마일이다. 광활한 대륙의 여러 얼굴을 만났고
곳곳의 특색을 가슴에 담아왔다. 국립공원들의 명소들을 봤고 잘 알려지지 않은 중부와 서부 향토 문화의 멋도
봤다. 버킷 리스트에 따갑게 남아있던 9주의 방문을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미국 50주를 찾아 보겠다던 야심을 이뤘다. 그것은 비록 장님이
코끼리 만지고 코끼리를 묘사하는 식이지만 넓고 다양한 미국의 전체 인상을 포착하도록 도왔다. 그런데 우스운
일은 집에 도착한 다음날, 남편이 준 질문이다. “다음에는 어디로 여행
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