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딸과 사위가 다녀갔다. 식탁에 둘러 앉아서 대화를 나누다가 재미난 사실에 온 가족이 까르르 웃었다. 남편과 나, 딸과 사위, 우리 네 사람의 출생국가가 다 다르고 딸을 뺀 나머지 3 사람은 이민 1세다. 코비가 생각났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 또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작년10월 중순 어느날, 이른 새벽에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마드리드행 기차를 타러 숙소를 나섰다. 밤늦도록 소란스럽던 관광객들은 자취없고 인적없는 어둑한 옛 시가지에는 스산한 찬기운이 감돌았다. 등에 진 배낭의 끈을 조이고 스카프로 목을 단단히 감쌌다. 육중한 그림자로 버티고선 대성당을 보며 신의 자비를 빌고 작별인사를 했다. 아쉬움이 컸다.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하며 천천히 휘어진 골목을 걸으니 나의 등산스틱이 돌길에 마주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빈 거리를 채웠다.

 

일등석 열차의 좌석은 공간이 많고 중간에 테이블이 있다. 한달 순례길 걸으며 심신이 많이 지친터라 눈을 감을까 하다가 배낭에서 책을 꺼냈다. 열차가 출발하자 앞에 마주앉은 동양남자가 말을 붙였다. 중국에서 온 나이 30의 젊은이로 말쑥한 외모에 눈이 크고 순해보였다. 햇볕에 얼굴이 그을리고 지쳐있는 나의 어디에서 친근감을 느꼈을까? 궁금해하며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주로 그가 이야기하고 나는 가벼운 반응을 했다. 그는 외로운 이민자였다.

 

2년 전 스페인으로 이민온 그는 코비 (Kobi)란 이름을 지었다. 상하이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일하다가 호텔경영을 공부하고 중국으로 견습온 스페인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다. 아내가 임신하자 두사람은 중국과 스페인의 상황을 비교 검토한 후 공기오염이 심하고 의료보험이나 교육과 육아비가 비싼 중국을 떠나 스페인으로 와서 아이를 낳았다. 처가집 식구들이 육아를 도와주고 아내는 작은 호텔에 취업했다. 문제는 스페인어를 못하는 그였다. 청년 두 명 중에 한 명은 직장이 없는 스페인에서 외국인인 그가 직장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아무리 노력해도 전공인 컴퓨터 분야는 고사하고 어떤 사무실 일도 못구했다. 먼저 이민온 중국인들은 자기네끼리 비지니스를 다 잡고 정착한터라 새로 도착한 이민자에게 냉정했다. 마지못해 중국식당의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쓸고 닦고 칼질하는 작업을 두 달 했더니 양손에 마비증상이 와서 그것도 그만뒀다. 매일 일거리를 찾아 스페인 북서쪽의 작은 도시를 헤매다가 이번에 큰맘 먹고 대도시 마드리드로 직장을 찾아 나섰다. 그의 음성에서 불안과 흥분에 약간의 해방감도 느껴졌다. 그의 상황이 딱해서 내가 살갑게대하니 봇물이 터지듯 코비는 푸념을  계속했다.

 

그는 15개월된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하루빨리 직장을 잡아 수입을 가져야 한다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내는 유럽의 다른 나라로, 월급이 좋은 지역으로 취업해 떠나고 싶어하지만 자신은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취업을 할수 없는 스페인 영주권자이다. 아내는 그에게 스페인 시민권을 취득하라고 조르고 그는 중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망설인다. 상하이에 있는 옛 직장에서는 언제든 돌아오라 하지만 이제는 아내가 중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거부한다. 가족과 함께 살려니 무조건 그가 스페인에서 취업해야한다. 절벽에 선 위기감이 젊은 코비의 숨통을 조였다.

 

미국이나 캐나다서 사는 것이 소망이지만 법적으로 이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는 코비는 동족인 중국인 친구가 스페인에는 한 명도 없다. ‘아이 하나’ 정책에 따라 외아들로 자라서 혼자 사는데 익숙하고 외로움은 잘 견딘다. 그가 스페인으로 떠날적에 부모는 기뻐했고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그러니 부모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자신의 막막한 현실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한심한 백수 생활에 아내와 갈등까지 생겼지만 아들을 위해 참고 산다. 오죽하면 동양인이라는 사실 하나에 반가워서 나를 보고 가슴속의 하소연을 털어 놓았을까. 스치고 지나가는 창밖의 정경을 의식하지 못하고 나는 그의 아픔과 고뇌에 완전히 말려 들어갔다.

 

희끗하게 흰머리가 섞인 나의 모습이 그를 편안하게 했나보다. 코비는 나를 보며 사랑으로 보담아주는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횡설수설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었다. 힘내라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을 들려주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코비의 이야기를 듣는동안 미국 이민와 체험한 나의 과거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비우고 내려놓았던 아픔들이 그대로 내속에 자리잡아 있음에 놀라웠다. 암담했던 나의 이민초기의 절망감이 코비의 삶에 전이된 것 역시 안타까웠다.

 

오랜 실직생활이 코비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아내의 타박을 받는 그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어릴적 꾸었던 야망은 접고 돈을 벌기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그에게 많은 환경의 변수들이 복병처럼 깔려있다. 빠르게 달리던 열차가 갑자기 우당탕 소리를 냈다. 바로 우리가 탄 객차의 바퀴에 소가 치였다. 언덕을 내려온 소가 철길가에 있었나보다. 열차가 멈추고 역원들이 죽은 소의 거대한 몸뚱이를 바퀴밑에서 끌어내느라 한동안 수고를 했다. 구경하느라 창가로 몰려온 승객들로 우리의 대화는 잠시 멈췄다. 열차가 다시 움직이자 코비는 앞으로 아이가 많이 보고 싶을 것이라며 아이의 사진을 다시 봤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가 삶의 전부인 그는 부모다. 그리고 인내심이 강한 중국인이다. 속에 쌓인 체증을 나에게 풀고나니 시원한지 그의 표정이 가벼워졌다.

 

열차가 많이 지연해서 목적지인 마드리드의 차마틴 역에 도착하니 7시간이나 걸렸다. 놀랍게도 나는 코비의 이야기를 듣느라 지루한줄 몰랐다. 우리는 함께 열차에서 내렸다. 무거운 가방을 끌고 나선 그의 어깨를 힘껏 껴안고 “두려워 말고 밝은 생각만 하라” 말해주고 헤어졌다. 어두워지기 전에 그는 어딘가에 숙소를 구해야 했다. 차이나타운으로 직장을 구하러 떠나는 그에게 신의 가호를 빌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앞서 걷던 그의 모습이 쏟아져나온 승객들로 가려질 때까지 나의 시선은 그의 뒤를 따랐다.

 

코비와 비슷한 나이의 영국인 둘째사위는 미국에 이민온 지 일년 반이 됐다. 작년8월부터 조지아대학 법대생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위는 아내와 처가집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학업에만 열중한다. 사위는 행운아다. 사위를 볼적마다 나는 코비를 생각하고 그리고 그를 위한 기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