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6시간 운전거리에 있는 대서양변의 남동부 최대의 무역항인 사바나는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매력적인 도시다. 조지아주의 첫번째 도시로 형성된 사바나는 고향을 그립게 한다. 이곳에 오면 옛것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예전에 이곳을 찾았을 적에는 관광버스를 탓다. 늙수그레한 안내자가 뒷소문까지 섞어서 생생한 이야기로 흥미를 줬지만 그당시 빠듯한 일정으로 자세히 보지 못한 미련이 남았다. 이번에는 5일동안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제대로 살펴봤다.

 

관광지도 한장을 손에 들고 매일 거리로 나섰다. 유럽 구대륙에서 온 초기 이민자들이 신대륙의 원주민과 타협하며 번성시킨 도시 곳곳에 숨쉬는 구수한 흔적들이 나의 오감을 간질렀다. 미국 최초의 계획도시로 바둑판처럼 조성된 다운타운은 일정한 구간마다 역사의 흔적을 담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수백년 묵은 나뭇가지들에 겹겹이 드리운 스페니쉬 모스가 바람에 휘청이며 독특한 마력을 보인다. 정착민들이 식민지 시대의 땅따먹기 투쟁과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전쟁에 이어서 남북전쟁과 세계 1, 2차 대전, 한국전과 월남전 등에 휘몰렸던 증언으로 곳곳에 세운 기념비들 중에 한국전 참전비가 있다. 참전용사와 전사한 해병대원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 앞에서 잠시 묵념했다.

 

1733년 처음 도착한 영국인에 이어서 프랑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코틀랜드나 아프리카, 카리브인, 유대인 등 속속 도착한 이민자들이 개성을 가진 도시를 창조했다. 더불어 그들이 영원히 안식하는 공동묘지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식스 센스를 보탠다. 이름을 남기거나 이름없는 낡은 돌비석에도 가슴이 떨렸고 그들의 혼이 축축 늘어진 스페니쉬 모스에 유령으로 앉아있는 착각을 했다. 음침하지만 아름다운 조각상들 사이를 새들과 다람쥐들이 한가하게 다녔다. 마치 조각공원 같은 인상을 주는 묘지를 어슬렁이다 여러번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잡아서 전신에 짜릿한 전률이 흘렀다. 특히 공동묘지에서 한나절을 보낸 날은 잠을 많이 설쳤다.

 

거리 곳곳의 팻말이 끊임없이 과거사를 이어주듯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동서남북 정열된 거리를 걸으면서 세월의 흐름에 거슬러 가다가 가끔 야외 카페나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관광객들을 구경했다. 사바나가 사람을 끄는 마력이 무엇인가 생각하니 선조들의 공적을 기리고 낡고 허름한 건물 하나라도 함부로 헐지 않고 소중히 보전한 이곳 사람들의 역사지키기 노력이 아닌가 싶다.

 

1994년 개봉된 영화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가 촬영된 공원에서는 나도 단순해졌다. 주인공 포레스트가 버스를 기다리며 앉았던 나무벤치는 현재 사바나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다. 흙이 잔뜩 묻은 운동화를 신고 벤치에 앉은 그는 옆에 앉는 사람에게 “나의 엄마는 나를 특별하다”고 했다며 그의 ‘초콜릿 박스 같은 인생’ 스토리를 들려준다. 지능이 낮고 신체적인 장애를 가졌지만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친구 제니의 도움으로 잘 극복한다. 그리고 어릴적부터 어머니가 마음에 심어준 긍정적인 용기가 그의 생활을 가이드하고 그의 행적은 줄줄이 가슴 훈훈한 성공사례로 이어진다. 단순한 마음을 가졌지만 심성이 착한 포레스트의 파란만장 스토리는 거의 만화같다. 그러나 그의 스토리는 감동을 준다. 솔직하고 진지하게 세상을 사는 자세가 참신하기 때문이다. 톰 행크스가 탁월한 연기로 관객들을 매료한 영화는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줬다.   

 

사바나를 휘젖고 다니며 관광객의 안목에서 벗어나 정겨운 거리를 가슴에 담았다. 사바나의 발자취를 따르니 개척민들의 영적 지도를 맡았던 전세기의 멋진 교회들도 가슴에 안긴다. 소문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술도시의 멋스런 거리에서 젊은 예술학도들이 창조하는 신선함을 즐겼다. 과거와 현재가 어울린 옛 건물들에서 푸근함을 받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걸으면서 편안했다. 더불어 시원한 강바람은 포구에서 일으킨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실어왔다. 특히 강변의 잔뜩 낀 이끼와 거무틱틱한 건물들이 주는 자부심에는 휘황찬란한 현대식 건물과는 전혀 다른 온화한 사람맛을 느껴 좋았다.

 

매력적인 도시 사바나는 잠시 살고 싶은 충동을 줬다. 위압감을 주지않고 외부인들에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다정함이 있다. 그리고 미합중국의 시작과 초기 이민자들의 노고를 보여주며 어디서 왔던 신대륙에 도착한 이민자들은 의기투합해 희망의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는 과거나 현재의 공통사임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