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에서 여과기와 산소공급기가 쌕쌕 쉰소리를 낸다. 바닥에 깔린 자갈위로 인공수초가 비실거리는 것을 보며 불쑥 시아버지가 그리웠다. 생전에 시아버지는 물고기 키우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의 집 차고안 벽 삼면으로 허리 높이의 선반을 설치하고 그위에 쭉 늘어선 어항을 만족하게 지켜보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래전 처음 시집을 방문했을 적이다. 자동차는 밖으로 밀려났고 차고안은 완전히 20이 넘는10 갤런 사이즈 어항들이 빼곡하게 차지한 물고기들의 세상이라 마치 펫 스토어 같았다. 어항마다 제각기 모습과 색깔의 수 십마리의 고만고만한 물고기들이 꼬물꼬물 헤엄쳐 다녔다. 물고기가 새끼를 낳으면 다른 어항에 분가를 시키고 다시 그 물고기가 커서 새끼를 낳으면 또 다른 어항으로 옮겨 돌봤다. 작은 미물의 생명을 지킬줄 아는 그는 애완물고기 전문가였다.

 

많은 어항을 청소하고 크고 작은 물고기들에게 알맞는 먹이를 주며 그들의 재롱을 즐기는 시아버지의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밝았다. 인자한 그의 품성을 닮은 물고기들도 순수한 천성을 가졌다. 그는 하루에도 여러번 차고에 가서 어항들을 꼼꼼히 살펴보며 물고기들의 상태를 살폈다. 말수가 적은 그는 놀랍게도 물고기들과 마주서면 흥얼흥얼 노래하듯 대화했다. 우루루 몰려서 그에게로 다가온 물고기와 교감하던 시아버지의 행복은 수 십년 계속됐다.

 

그는 가슴의 통증으로 응급실에 갔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소식받고 부랴부랴 캘리포니아에 있는 시집에 가서 내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차고였다. 나를 맞은 것은 물고기들이 아니라 텅 빈 선반들이었다. 가득하게 자리를 차지했던 어항들이 하나도 없었다. 놀라 시동생에게 물었더니 우물쭈물 대답했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바로 그의 아내가 모두 처분했다. 살아있는 생물이라 누군가가 돌봐야 해서 그랬다는 옹색한 변명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제멋대로 시댁의 물품을 처분하기 시작한 시동생네의 처사에 서운했다. 귀중품이나 가재도구를 치운것에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시아버지의 장례식도 치르기 전에 그가 그토록 돌보며 사랑하던 물고기들을 처분한 것에 나는 무척 화를 냈다.

 

시아버지의 물고기 사랑을 남편도 배웠다. 처음에는 작은 어항이었다. 10 갤런이 20 갤런 사이즈로, 다시 40 갤런으로 커지다가 어느날 55갤런의 수족관이 부엌 한쪽에 떡하니 자리잡았다. 그 속에는 열대어나 금붕어 등 물고기떼가 늘 북썩거렸고 남편은 귀찮다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물갈이 해줬다. 새끼를 낳아 바로 잡아먹는 어미로 부터 보호막을 쳐서 새끼를 보호하고 병든 물고기를 치료하기 위해 온갖 처방약을 사용해서 돌봤다.

 

그러다가 손가락만한 비단잉어 코이 한마리가 들어와서 어항을 장악했다.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먹이를 주며 코이의 눈빛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다양한 간식거리도 받아먹으며 코이는 무럭무럭 자라 55갤런 탱크를 비좁게 누볐다. 오렌지와 은빛 비늘이 매끈하던 코이의 큰 몸집은 방문자들에게 경이감을 줬다. 언젠가 펫시터가 ‘드래곤’ 과 ‘몬스터’를 합친 ‘드라몬’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드라몬은 몸길이가 15인치가 넘도록 계속 자라 방향을 바꾸기가 거북하도록 수족관을 꽉 채웠다.

 

지난달 유타주의 여행지에서 펫시터의 전화를 받았다. 드라몬이 죽었다는 소식에 온 가족이 놀랐고 남편은 많이 슬퍼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지난 20여년 우리와 함께 살았다. 특히 드라몬이 죽은 날이 바로 ATV바이크 사고가 난 날이어서 가족들의 액땜해주고 떠났다며 남편을 위로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깨끗한 타월에 산 드라몬을 뒷뜰 한곳에 묻어주며 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후 수족관을 거들떠보지 않던 남편이 어느날 내부를 깨끗이 청소하고 필터를 갈아 끼웠다. 그리고 다음날 ‘드라몬 쥬니어’와 여자친구 ‘버터플라이’를 데려왔다. 어항속에 풀어진 두 코이는 넓은 물속을 신나게 헤엄치며 새로운 생기를 집안에 보탰다. 우리 부부는 밤이 늦도록 귀여운 물고기를 보며 즐거웠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남편이 어항에서 본것은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물고기들이었다. 그들을 드라몬 옆에 묻어준 후 남편은 수족관에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동안 별 생각없이 비늘을 다듬고 구워먹던 생선이 반려동물로 함께 살았던 드라몬과 오버랩되어 나도 생선을 요리하지 않는다. 여전히 작동하는 여과기와 산소공급기가 텅 빈 수족관에 허전한 가을바람을 일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