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을 밀어낸 개척인들은 천연환경에 잘 적응했다. 좋은 토양과 기후는 농경에 적합했으나 땅을 일구고 농산물을 수확할 노동력이 부족했다. 사람들이 한쪽 눈을 감았던 것은 아마 그때부터 였던것 같다.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야는 좁았지만 야망은 줄지 않았다. 남부로 서부로 시선이 흩어지자 시력이 약해졌다. 안경이 필요했고 하늘의 빛에 눈이 부셔서 안경에 색조를 넣었다. 색안경을 낀 사람들은 빛과 어둠을 혼돈했다. 회색 환경은 사람을 변화시켰다. 그림자 드리운 일상에서 사람위에 올라선 사람이 사회를 지배했다. 오랫동안 한쪽 눈을 감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서 파란만장한 인연을 계속했다.

종적관계에서 사람아래 사람들은 땀과 피를 흘리며 한 많은 삶을 살았다. 그들의 희생은 성공적인 미국 개척사에 영구적인 얼룩이었다. 얼룩을 지우기위한 노력은 남부와 북부 사람들의 충돌과 많은 희생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회변화는 거북이 걸음이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고집스러웠다. 존엄성을 잃은 인간의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동등한 권리를 찾던 사람들이 의기투합하여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다. 마침내 그들은 사람관계를 만인이 평등한 횡적관계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머뭇이던 사람들은 천천히 색안경을 벋었고 감았던 한쪽 눈을 떴다. 모든 사람들이 자연의 빛을 원색으로 볼 수 있게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진실로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아래 사람없다’ 실현을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어쩌면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이런 미국 인권운동 역사의 중앙무대는 앨라배마였다.

많은 외부인들이 올봄에 앨라배마를 찾았다. 50년 전 흑인들이 참정권을 얻도록 유도했고 인권운동의 획기적인 기점이었던 사건을 잊지 않았다. 전현직 대통령과 100여명의 연방 상하원 의원들에 전국에서 찾아온 5만여명의 시민들이 인구 2만인 소도시 셀마에 모여서 과거와 현재가 미래로 이어지는 다리를 함께 건넜다. 미국이 진정으로 미래로 향하도록 수고한 반세기전 사람들의 용기와 노력이 재조명 되었다. 그리고 그당시 사건을 재현하는 사람들은 셀마를 출발해서 56마일의 거리인 몽고메리까지 도보 행진을 했다. 그들이 한발짝씩 떼어 놓을 적마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던 과거가 되살아났다.

행진에 참여한 외부인들이 어떤 인상을 얻고 앨라배마를 떠날지 궁금해하니 어릴적 한문을 배운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아이들에게 생경한 한문을 가르친 선생의 이름이나 얼굴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형문자로 뜻을 담은 언어를 소개해준 그의 가르침은 생생하다. 그 중에서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은 사람 인 (人)을 가르치며 풀어준 설명이다. 사람은 꼿꼿이 혼자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서로 기대며 의지해야 사는 존재라는 한자 풀이였다. 소소한 획에도 의미가 담겼음을 가르친 대단히 매혹적인 교훈이었다.

그처럼 사람과 사람의 연계는 세상만사의 기본이다. 인간이 살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꼬집어서 지적하라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서로 돕고 도우며 산다. 더불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은 얽히고 설키며 공존한다. 밀림속에 수 많은 나무들이 있다. 나무 하나 하나가 제 몫을 해야 어울려서 숲이 되고 밀림이 된다. 이 단순한 진리를 배우는데 걸렸던 세월을 생각하면 참으로 먼 길을 걸어온것 같다.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의 거리는 한국에서 몽고메리로의 내 인생길의 축소판 같다. 흑백인의 인종 차별제도의 철폐 과정과는 조금 달랐지만 동서양의 문화와 관습이 접목해서 토박이와 이민자가 부딪치며 힘들게 적응하는 과정을 거쳤다. 우여곡절 먼 길을 구비구비 돌아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으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 또한 나 한사람이 얻은 성과가 아니다. 나의 노력위에 손을 잡아 끌어주고 등을 밀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솔직히 내가 베푼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받을동안 사람의 존재를 단정지어준 상형문자는 생활의 지침이었다.

지난 50년 앨라배마는 많은 변신을 거쳤다. 피부색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고 동성애자들의 결혼까지 허용하는 사회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뒤를 돌아보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인다. 내 사는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들은 이민자에게 무지개로 떠오른다. 가능성과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좋은 징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