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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어 선 열차의 바퀴에 세월의 흔적이 끼였다.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하더니 열차도 그랬다. 녹이 많이 쓸어서 낡은 껍질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고 있었다. 웅대한 기적을 울리며 테네시 계곡의 온갖 생명체를 깨웠던 적이 언제 였던가. 40년이 훨씬 넘었다. 열차의 기적소리에 원근에서 손님들이 달려온 것도 까마득한 과거이다. 이제는 한물간 고물로 철길에 넋 놓고 서 있으니 목이 메어서 기적소리도 나지 않는다.

1880년 신시내티를 출반한 여객열차가 이곳에 멈춘 것이 시작이었다. 북부에서 남부로 내려가는 코스 중앙에 차타누가가 있다. 남북으로 교류하는 승객이 늘고 화물이 늘면서 철로산업이 활발하자 역청사가 필요했다. 1909년에 건축된 그 당시 최고의 건축 디자이너가 고안한 웅장한 차타누가역은 빅토리안 스타일의 아름다운 내부를 가졌다. 85 피트 높은 돔 천정 아래에 사면이 반달형의 아치구조이다. 앞과 뒷면의 아치는 유리로 장식되어 빛이 들어와 넓은 공간을 밝힌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사틴과 레이스의 전세기 의복을 입은 손님들이 사각거리며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철로가 교통수단으로 한창이었던 시절 테네시 강을 끼고 개발된 차타누가는 열차손님들이 즐겨찾던 관광지여서 하루 100대가 넘는 기차들이 들락였다. 1940년대 ‘그랜 밀러 밴드’가 경쾌한 멜로디의 ‘차타누가 추추’ 노래를 유행시키며 이곳은 더욱 유명해졌다. 그 후 다른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면서 1970년 여객열차는 멈추었고 역청사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지역인들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역사는 호텔 ‘차타누가 추추’로 변신을 했다.

총 24에이커의 호텔 부지는 끊어진 선로 뒤로 객실 건물이 셋 들어섰고 가족 휴양지로 손색이 없도록 다양한 시설을 갖추었다. 붉은 벽돌의 견고한 역사 건물은 이제 도시의 소음을 단절시키고 손님들의 편안한 휴식과 즐거움을 돕는 호텔의 로비가 되어 손님을 맞이한다. 열차를 타려던 많은 사람들이 들락이던 문을 요즈음 휴식을 원하는 몇 사람들이 밀고 들어선다. 가까이 있는 철로 기념관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모형도시와 열차를 보면 승객들로 번잡했던 시절이 실감이 난다.

옛 승강장 사이에는 잘 가꾸어진 정원이 마련되어 있다. 그 옆으로 초기에 나무를 태웠던 증기 기관차가 서 있다. 산뜻한 페인트칠로 단장을 해서 세월의 흔적이 가물거린다. 호텔 로비와 객실을 연결시켜 주는 승강장들 옆으로 길게 이어진 철도차량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달려서 손님을 이동시키던 용도에서 이제는 옛 향수를 찾아오는 손님들에서 잠자리를 제공한다. 승강장 사이를 다니며 객차안 식당과 호텔 방으로 개조된 차량을 넘보다가 정원의 벤치에 앉았다.

곳곳에 있는 분수의 물줄기에 장미향기가 섞여서 주위에 퍼졌다. 정원에 가득한 500여 그루의 꽃나무는 모두 미국종 장미들이다. 특히 미국을 수호하는 군인들에게 바쳐진 장미송이는 내 두손을 쫙 편것보다 크다. 애국심이 남보다 강함일까. 멈춘 열차와 싱싱한 꽃. 죽은 것과 산 것.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나누는 대화가 궁금해서 정원을 어슬렁거렸다. 온 몸으로 햇살을 받으며 침묵의 언어에 귀 기울이니 나도 시간대 없는 그림속에 들어선 착각이 들었다.

주위에 낮으막한 산과 강, 좋은 천연 조건을 가진 이곳은 오래전 체로키 인디언들이 원주민이었다. 그들이 개척인들과 가졌던 갈등은 흐르는 강물에 다 떠내려 가지 않고 둔턱에 걸려있다. 더불어 남북전쟁의 격전지 잔재들도 산 중턱에 군데군데 상흔을 남겼다. 백인들에게 땅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쫒겨간 체로키 인디언들이 가졌던 원통한 심정을 멈추어 선 열차도 느꼈던걸까. 하지만 변하는 환경에 따라 적응했고 존재가 사라지지 않고 거듭 났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옛 정취를 잘 보존한 호텔 ‘차타누가 추추’는 전국에 있는 200여 역사적인 호텔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전세기 사람들의 호흡을 느낄수 있는 호텔 ‘차타누가 추추’ 에 머물면서 나의 의식은 과거와 오늘을 들락인다. 과거에 연연한 방랑자의 마음으로 ‘차타누가 추추’ 노래의 리듬을 회상하는데 멀리서 기적소리가 울렸다. 아늑한 향수로 찾아온 기적소리에 훗날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여행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