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소낙비가 5월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2002년 4월, 앨라배마 몽고메리시 남쪽 들판에서 기공식을 한 현대자동차 회사가 2005년 5월에 준공식을 하고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소들이 어슬렁이던 비옥한 땅에 묻은 한톨의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4월의 원인에 5월의 결과였다. 

 

척박한 남부에 과감하게 투자한 모국의 현대자동차 회사는 모험을 했고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서 인센티브 많이 주고 유치해서 적극 후원한 가난한 주 앨라배마도 도박을 했다. 그다음 이야기는 아름다운 전설이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생산의 기록을 연거푸 갱신하며 성공사례가 되었고 몽고메리 사람들은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다’는 한국의 옛말을 진실로 목격했다. 사람도 변했고 환경도 변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win-win이다.

 

현대자동차 회사를 따라와 정착한 많은 협력업체들도 막강한 숫자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주정부와 멕스웰 공군기지에 의지하던 몽고메리의 경제지수에 변수로 등장했다. 안정된 직장과 좋은 보수는 시민들의 생활수준을 상승시켰고 비지니스는 호황을 누렸다. 앨라배마가 멋진 기회의 땅이 되자 서부로 금광을 찾아 이동했던 전세기의 사람들처럼 일자리와 사업의 기회를 찾아 한인들이 몰려왔다. 한인가게들이 몰린 한인촌이 형성되고 한국어 간판의 교회들이 속속 늘어났다. 한식당들과 식품점, 미장원, 당구장, 제과점에 노래방까지 골고루 생기며 한인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한인들의 생활은 한결 편리해졌고 지역에서 흑인과 백인에 이은 세번째로 숫자가 많은 인종이 되었다.   

 

현대자동차 회사는 지역사회를 후원하는 대기업의 의무를 수행하고 적극적인 민간외교를 펼쳤다. 해마다 정치 사회 각분야의 지도자 15-20명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남부인들의 한국관을 바꾸어왔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는 강력한 진리대로 한국에 가서 직접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온 사람들에게 한국은 낯선 동양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세계의 경제 거인이었다. 한국처럼 ‘하면 된다’는 철칙을 남부에 심도록 도와서 한국과 앨라배마의 거리를 좁히니 상호이해와 건전한 존경심이 생겼다. 배타성이 강한 남부사람들의 성향과 고집스런 사회상의 판도가 조금씩 바꾸어졌다. 각처 지도자들에게 남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번지르르한 언변인 talk the talk이 아니라 실지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walk the walk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했다.  

 

현대자동차가 몽고메리 공장에서 첫 자동차를 생산한 것은 2005년 5월이었다. 그리고 내가 첫 글을 쓴 시기도 정확히 2005년 5월이었다. 우연이었을까? 지역 상공회의소에 일하면서 새로 이주해온 모국인들이 남부의 문화와 환경에 힘들게 적응하는 것이 딱해서 그들의 이해를 도울 목적이었다. 인종차별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이곳의 관습들을 한인들에게 한꺼번에 소개하려고 글을 써서 신문사에 기고했다. 맞춤법이 엉성했고 1970년대 표현법을 사용했지만 꾸준히 쓰다보니 글에 날개가 달렸다. 30년 사용하지 않던 한글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적에는 10년 후를 생각하지 않았다.

 

잊고 살았던 어릴적 고향문화를 회상하며 은근과 끈기, 소박한 정과 한의 정서에 젖어 한글 단어와 매주 씨름했다. 내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을 하는지 묻는 버릇을 가지고 글의 주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이민생활에 적응하느라 앞만보고 달려온 생활에서 뒤를 돌아보며 현재 서있는 자리를 지켰다. 한국과 미국, 미국과 한국. 살면서 바뀌어온 의식구조와 가치관, 나의 미국생활을 풀어내는데 한글은 천연덕스러웠다. 흩어진 생각들을 꿰어서 언어로 매듭짓다보니 주류사회에 살며 보고 느끼는 한인 이민자의 발자취를 남겼다. 쓰면 쓸수록 도전을 받았지만 흐르는 세월에 순종하며 삶에서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았다. 인생은 어려운 과제가 아니라 살면서 조금씩 해답을 찾는 과정임을 이해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니 은연중에 글쟁이로 변신했다.

 

지난 10년, 현대자동차 회사는 해마다 생산과 판매의 기록을 갱신하면서 품질좋은 자동차를 생산해서 미국시장을 다졌다. 나도 열심히 글을 써서 ‘앨라바마 멜로디’ 수필집을 발간했고 미국과 한국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했다. 도전과 장애는 배움과 지혜의 수확을 주었다. 세상만사가 참으로 오묘하게 얽혀있다. 한국의 대기업과 앨라배마, 좁은 세상에서 함께 사는 방법을 익혔고 이제 몽고메리는 경제 도약의 발판에 섰다. 다음 10년이 몰고올 화끈한 변화에 앨라배미안의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