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에 여러번 미술관의 그림앞에 멈추어 섰다. 수 십년 전에 살았던 여자의 심정을 이해하자고 그녀가 남긴 그림들에 매달리는
마음이 무겁다. 밝고 행복한 느낌을 주지않는 그림들은 시종 시무룩하다. 수채화 몇 점과 종이 인형 몇 점, 그리고 유화 3점
등 전시된 총 25 작품에서 그녀의 휘청거림을 본다. 빛과 온도에 예민한
종이 재질을 보호하는데 특별히 신경쓰고 있다는 미술관 큐레이터 설명이 아니더라도 액자속의 그림은 흔들리고 있었다.
몽고메리 미술관에서 이곳 출신인 한 천재 예술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재조명한 ‘차와 대화 (Tea
and Talk)’ 특별 프로그램을 가졌다.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
(1900-1948). 작가였으며 화가였고 또한 발레리나였던 그녀는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아내였다. 생전에
그녀가 좋아했던 비스킷과 복숭아에 차까지 푸짐하게 마련된 테이블 주위로 찾아온 손님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그녀에 관한 뒷이야기를 나누었다.
75년 전 젤다와 알고 지냈다는 옆자리에 앉은 노인은 청각이 나빠서 별로 대화할 수 없음이 유감이었다.
다운타운에 있는 스콧과 젤다 피츠제럴드 기념관의 관장은
젤다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했고 미술관 큐레이터는 그녀의 작품세계에 촛점을 맞추었다. 그당시 사회 환경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지 못했던 여성의 입장과 유명한 남편의 그늘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던 젤다의 예술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풀이했다.
출생과 성장, 결혼과 출산, 그리고 나이들어 가는
인생 코스에서 그녀는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앨라배마 대법원 판사였던 아버지를 둔 그녀는 실버 스푼을
물고 태어났다. 엄격하고 완고한 아버지와 낭만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러 형제중 막내인 젤다는 풍족한
어린시절 부모와 사회질서에 반항하는 스캔들을 일으키며 독보적인 개성을 보였다. 몽고메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모로 인기를 몰던 그녀를 본 스콧 피츠제럴드는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난한 스콧의 청혼을 거절했다가
그가 소설가로 유명해지자 뉴욕에 가서 그와 결혼했다.
피츠제럴드 부부는 1920년대 재즈 전성시대의 상징적인 젊음으로 부와 명성에 어울리는 사치한
생활을 즐겼다. 그들은 뉴욕에서 유럽으로 옮겨가 화려한 생활을 계속했다. 남편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젤다는 유럽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발레를 했다. 젤다는 스콧의 작품세계에 뮤즈였고 스콧은 젤다의 창작활동에 걸림돌이었다. 스콧이 젤다의 일기를
자신의 소설에 사용하자 젤다는 노골적으로 남편과 마주섰다. 하지만 젤다가 소설가로 자신보다 더 빛을 받을까
걱정한 스콧은 번번이 그녀의 작품발표를 방해했다. 남편 못지않은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지만 남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젤다는 글 쓰는 것보다 발레에 집중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유럽에서 받은 영향은 그림속에
스며있다.
그들이 수입보다 지출이 큰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자
경제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스콧의 알콜 중독은 노골화되고 젤다는 정신분열증 증상을 보여서 여러번 병원에 입원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부부는 잠시 몽고메리에 함께 살았다. 그당시 정신질환은 전기충격 치료법을 주로 사용했고 계속 치료를 받아도 젤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불안정한 감정과 영혼이 표출구를 찾아 꿈틀였고 그녀는 끊임없는 창작열에 휩싸였다. 그러다가
스콧은 젤다를 애슈빌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돈을 벌러 헐리우드로 갔다. 스콧은 그곳에서 194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젤다도 1948년 정신병원의 화재로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들의 비참한 최후였다. 젤다의 죽음후 그녀의 어머니는 젤다가
남긴 그림을 모두 없애라고 가족들에게 지시했다. 그녀가 생전에 미술관과 지인에게 준 작품 몇과 딸인 스코티가
보관하던 그림들이 이땅에 남은 유일한 선물이다.
그녀가 그린 추상적인 그림, ‘서커스’ 앞에 섰다.
그림속의 광대는 바로 그녀이다. 타이트로프위에 선 곡예사로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위태롭게 발란스를 맞추며 버틴다. 질식상태에 빠진 그녀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극적인 삶을 살면서 일상의 평안을 찾으려는 그녀의 노력이 안스럽다. 활짝 날개를 펴서 맘껏
날아보지 못하고 시대 상황과 정신질환에 시달렸던 그녀의 소리없는 아우성에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의 그림앞에서 여권신장을 구했고 무너지길 거부하며 강력하게 버텄던 그녀의 삶을 기념한다.
*** 젤다 특별전은 몽고메리
미술관 (Montgomery Museum of Fine Arts)에서 8월 23일까지 열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