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도니아 (Caledonia)’. 부드럽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단어다. 이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대 로마인들이 스코틀랜드 북부 지역를 칭한 이름이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가수 도기 맥린 (Dougie MacLean)은 20대에 유럽을 배낭여행했다. 어느날 프랑스의 해변지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착상으로 지은 노래에 ‘칼레도니아’ 라는 곡명을 붙였다. 자신이 가진 향토심과 방랑끼에 도전의식까지 모두 가사에 담고 잔잔하게 이야기 들려주듯 부드럽게 작곡했다. 고향으로 돌아간 도기 맥린은 1979년에 이 곡을 발표해서 히트를 쳤다. 그는 유명해졌고 이 노래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애호가가 되었다. 이제는 모든 켈틱 가수들이 즐겨 부르고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좋아한다. 만약에 스코틀랜드가 영국제국에서 독립하면 국가로 정하자는 설이 나왔을 정도로 한국의 ‘아리랑’ 처럼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사랑하는 노래이다.

 

1980년대초 독일에 살적에 켈틱 노래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가벼운 발라드식의 노래는 대학시절에 유행했던 통기타 노래를 연상시켰다. 고향땅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웠던 시절이라 약간의 공통성에 마음이 동했다. 수 백년 영국의 지배하에 억눌려 살았던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사는 켈트족은 한이 많은 민족이다. 그들의 한풀이는 자연과 사람살이를 소재로한 노래에 나타났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민족성이 켈틱 노래에 점철되어 있었다. 천연 환경을 닮은 끈기로 피지배자의 서러움을 유머스럽게 긍정적으로 풀어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들 나름의 독특한 액센트가 멜랑콜리하게 분위기를 주도하는 켈틱 노래는 그 지역에 무성한 신화처럼 신비한 마력으로 나를 끌었다.

 

이민생활 힘들적에 마음 줄 곳이 생겨서 좋았다. 켈틱 노래를 들으면서 운명을 받아들이며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다졌고 위안를 받았다. 특히 나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주던 ‘칼레도니아’ 가사는 한편의 시였다. ‘저에게 일어난 변화를 볼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난 며칠 제가 멀리 가버릴까봐 두려웠어요/ 옛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니/ 제가 어디서 왔음을 생각하게 해요/ 오늘 제가 멀리 있는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랍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당신을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칼레도니아, 당신이 부르니 저 이제 돌아가렵니다/ 만약 제가 낯선 사람이 되었다면/ 저는 슬픔보다 더 큰 아픔을 느낄것을 알아주세요/ 칼레도니아 당신은 저의 모든것 입니다…’ 물큰한 감동으로 다가와 허전한 가슴을 채워주었고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모국을 향해 길게 늘이던 모가지가 엉뚱한 방향으로 향했다.

 

그후 ‘칼레도니아’는 나의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는 고향이 그리울적에 불렀던 동요 ‘고향의 봄’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고향의 봄’은 이원수가 쓴 동요에 홍난파가 곡을 붙여 1927년에 발표했다. 도기 맥린은 20대, 이원수는 10대였던, 젊은 나이의 청춘들이 지은 가사라 삶을 보는 안목이 신선하다. 세상물정에 젖은 편견이 없고 교훈식의 어떤 조언도 없다. 그들은 그리운 고향의 얼굴을 맑고 청명한 하늘에 곱게 그렸다. 넓게 펴진 하얀 구름위로 순수한 사랑이 그대로 모습을 들어내었다.

 

사실 ‘칼레도니아’를 처음 들었을 적에는 갈등이 있었다. 고향사랑에 끌려서 결국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노래 가사에 “그래 좋지” 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그런 생각을 마음속 깊숙이 숨겼다. 이민생활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고 그리운 얼굴들은 눈앞에 늘 어른거렸다. 힘들었던 날은 충동이 더욱 많이 일었다. 솔직히 나도 변해서 낯선 사람이 되기 전에 고향의 품에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도기 맥린이 아니었다. 어릴적부터 역마살이 붙어있었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던 이기적인 욕심이 많았다. 가능성을 포기하기 싫었고 무엇인가 할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향을 등지고 낯선 지역을 떠다니는 이유를 찾아 보았다. 그러다가 발자국이 별로 없는 숲길을 멀리 걸어서 코너를 돌아선 나 자신을 보았다. 앞에 열린 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지만 나의 의식이 바뀌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이제는 변함이 낯설거나 두렵지 않다. 나도 변하고 모국도 변하고 모두가 변했다. 변한 고향의 상황에 변한 나의 모습이 엇비슷하게 얽혔다. 줄줄이 떠올랐던 과거의 추억은 흐릿하지만 매일 만드는 새로운 추억은 산뜻하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여지껏 살아오면서 마음이 끌렸던 곳이 다 고향이 되었다. ‘칼레도니아’와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면 고향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고향을 그리는 노래들이 탯줄되어 나의 존재를 연결시켰다. 모순같지만 고향을 잃고서야 고향을 찾았다. 고향은 나의 감성과 육신 그리고 영혼에 짊어지고 사는 보이지않는 실재이다. 죽을때까지 벗어나고 싶지 않은 그 테두리안에는 삶의 이끼가 씌여지고 다듬어져 부드러워진 모서리를 가진 현실이 있다. 여리고 깊은 원초의 사랑이 나와 함께 숨쉬고 있다. 단순하고 진실한 모국애이다.

 

요즈음도 두 노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후렴처럼 섞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봉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울컥이던 감정에 평안이 온다. 스코틀랜드의 안개 자욱하고 바람 거친 들판에 소박한 고향의 옛 산촌마을이 오버랩된다. 낮으막한 산언덕이 구비구비 이어지는 곳, 휘어져 구부텅한 논밭 사이로 노란 개나리꽃 화사한 초가집이 듬성듬성 자리잡은 아늑한 천지. 황야의 짙은 푸름에 아기자기한 고향동네가 잘 어울린다. 그렇게 모국의 동요에 켈틱 노래가 접목되어 나에게 행복을 준다.

 

피부색깔이나 문화, 국경을 건너뛰고 세상 사람들이 향수를 느끼는 지역은 어느 곳일까? 궁금하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인생에 마음이 푸근해지는 고향, 삶의 중심은 무엇일까? 급변하는 환경에 숨가쁘게 파도타듯 출렁이며 사는 현대인들 모두가 혼자서 기기잡고 북치고 장구 잘 친다. 향수를 느낄 여유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음악은 침묵의 컵을 채우는 포도주’ 가 된다. 오늘은 ‘고향의 봄’에 이어서 ‘칼레도니아’가 나 사는 이곳, 미국 남부에 울려 퍼진다.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고향으로 긴 눈길을 준다. 고향을 찾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