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지내다 앨라배마를 거쳐
미시시피로 건너갔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관광도로의
한적한 천연환경은 남부의 진정한 면목이다. 땡볕아래 졸고있는 시골마을을 지나가며 나도 하품을 삼켰다.
가물가물 춤추듯 눈앞에 다가오는 열기는 커피로 식혔다.
오션 스피링에서 빌록시로 건너가는 6차선의 산뜻한 다리를 건넜다. 빌록시가
태풍 카타리나 이전과 이후로 면모를 바꾼것처럼 1.4마일 거리의 현대식 구조물인 새 다리도 상큼하다.
기분좋게 다리를 건너 빌록시로 들어서며 ‘Katrina+10’ 사인을 봤다.
단어 ‘카타리나’는 충격파이다.
끌리듯 사인을 따라가서 해안가에 있는 오-오키프 미술관 (Ohr-O’Keefe
Museum of Art) 앞에 차를 세웠다. 빌록시가 자랑하는 이 미술관은 현시대의
건축가로 추앙받는 프랑크 게리 (Frank Gehry)의 작품이다. 그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환경을 고려해서 독특한 건축물을 창조하기로 유명하다.
특이한 재료와 디자인으로 시선을 끄는 미술관은 거대한
떡갈나무를 중심으로 춤추듯 옹기종기 모인 6건물이다.
안뜰에 있는 그늘에서 잠시 쉬면서 바라본 4개의 작은 유선형 스테인리스 스틸의 구조물에
빛이 사방으로 반사했다. 바닷가 작은 도시의 저력은 길건너에 있는 바다처럼 끈질기고 강하다.
‘Katrina+10’ 특별전은 태풍 카타리나가 남부 해안을 강타한 10년 기점에서
가지는 재확인이다. 전시 공간마다 친절한 봉사자들이 안내했다. 120마일 속도로 들이닥쳤던 태풍은 광폭했고 인정사정없이 잔인했다. 그당시 피해상황을 보여주는 대형
사진들은 여전히 파워풀한 증언을 한다. 전시 공간이 좁아서 였는지 현실감이 더욱 생생하다.
전시품들을 본 후에 테이블에 앉아서 헤드폰을 꼈다. TV화면은 태풍 이전과 이후, 더불어
복구 상황에 대한 설명을 다양한 분야에서 재조명했다. 지역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국 언론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실시간으로 취재하고 보도한 노고로 피버디상과 에미상,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자연재해에 용감한 인간이 맞서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빌록시의 회복과 재기를 위해 지역인들만
아니라 전국에서 찾아온 봉사자들의 헌신을 보여주었다. 재난을 계기로 나눈 훈훈한 인간애에 흐믓했다.
태풍 카타리나는 자연과 인간은 서로 이해하고 공존해야 함을 일깨웠다. 이제 빌록시는
슬픔을 딛고 희망을 찾았다. 잃은 것이 많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나는 빌록시를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내사랑 빌록시는 텍사스에서 공군의 기본 군사훈련을 끝내고 미시시피 빌록시에
있는 키즐러 공군기지로 행정교육을 받으러 갔던 1978년 여름부터 였다. 부대의 위치가 멋졌다. 정문을 나서서 한 블럭만 가면 바로 해변이다. 새벽 6시에 시작한 교육이 정오에 끝나면 다음날까지 자유였다. 매일 오후에 훈련병들은 삼삼오오 떼지어 해변으로 갔다. 7월의 뜨거운 여름 태양열에 달구어진
모래사장처럼 젊은 군인들의 마음도 뜨거웠다. 특히 중부 내륙에서 생전 바다를 보지 못했던 젊은이들에게 바다는
신비의 세계였다.
넓은 하얀 모래사장을 걸으면서 참으로 많은 꿈을 꾸었다. 그때 해안 맞은편에 길게 이어진 환상적인 고옥들에 마음을 뺏겼다.
바닷바람에 구부정 휘어진 떡갈나무들 사이로 전세기 고옥들은 제각기 풍취와 미모를 가진 그림엽서의 정경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발령지로 떠날때까지 붉게 탄 피부로 고생하며 배로 엎드려 잠을 잤지만 해변으로 나가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슬프게도 함께 해변을 찾았던 동료들을 그후 한번도 만난적이 없고 꾸었던 꿈도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미술관을 나서서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90번 도로변에 섰다. 해변 곳곳에
대형 카지노 건물들이 늘어선 정경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흔적없이 사라진 고옥들의 자리에 들어선 현대판
휴앙지 별장과 관광객을 위한 식당 건물들에 낯설다. 아직 많은 지역은 빈터로 남아있지만 방문할적마다 새롭게
모습을 들어내는 건물들이 옛 추억을 하나씩 지운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 사이로 우아한
고옥들이 흐늘거린다. 아직 가슴에 담겨있는 정겨움이다. ‘Katrina+10’ 특별전에서 보았던 태풍 이전의 소박한 환경이 그립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런데 살아있지 않는 것도 사라지고 변화가 변화를 불러온다.
과거를 기억하니 현재가 힘들고 미래가 두렵다. 태풍 카타리나에 넘어진 떡갈나무의
혼이 담겨있던 가지들로 창조된 조각품들이 해안도로 곳곳에 자리잡은 것을 본다. 마치 주름살 제거 수술을 받았듯이
노화된 환경을 제거하고 새롭게 탄생한 빌록시를 대변하는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