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바닷가 휴양지는 여유와 평안이 충만했다. 공부하는 사위들없이 딸들과 예전에 즐겨 다녔던 미시시피,
앨라배마, 플로리다 바닷가 휴양지를 돌며 추억여행을 하던 중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1살이 되는 딸과 68세가 되는 어머니의 생일파티를 알리는 지인은 토를 달았다.
처음 생일을 맞이하는 딸과 어쩌면 마지막 생일을 맞는 어머니를 위해 꼭 참석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파티 날에 참석할 수 없으니 미리 방문해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리고 머물고 있던 휴양지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이라 주춤이는 온가족을 대동하고 그집을 찾아갔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그녀의 집은 한낮의 태양볕에 평화로웠다.
병약한 그녀의 어머니는 침대에 멈춘 식물같은 상태라
2시간마다 몸을 뒤척여 주어야했다. 푸른 눈동자는 막 떠나온 맑은 바다빛이고 입술은 벽에 걸려있는 사진속의 미소짓는 아름다움 그대로였다. 그외의 모든 외적인 모습은 낯설게 변했다. 언어 치료사가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한다는 지인의
설명은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보다 더 희미했다. 가만히 방문자를 지켜보는 눈빛은 세상 모든것을 체념한 슬픈
눈빛이 아니라 아이의 순수함이었다. 만지면 부스러질듯 마른 그녀의 팔에 살짝 손을 얹었다. 체온을 나누고 싶었다.
남편과 딸들도 그녀의 변한 모습에 충격을 받고 침대
가까이서 침묵했다. 언어를 잃은 우리의 아픈 인사였다.
가만히 눈을 감은 그녀를 지켜보다가 응접실로 갔다. 첫 생일을 맞이하는 지인의 딸은
할머니를 닮았다. 맑고 푸른 눈망울이 초롱 초롱 빛났다. 아이가 미소를
보일적마다 우리는 탄성을 자아냈다. 장난감을 붙잡고 선 아이는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들며 우리를 완전히 매료했다.
할배 할매가 되고 싶은 우리 부부는 아이를 원하는 큰딸의 부러운 눈길을 피했다. 옆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할머니가 고인 물이라면 아이는 졸졸 흐르는 물이었다. 생일 선물을 잡은
아이가 발산하는 싱싱한 에너지는 안타깝게도 할머니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리빙과 다잉. 일생일사. 한 공간에서 동시에 체험한
숙연함으로 그 집을 나서며 모두 침묵했다. 잔인하게 죽어가는 목숨을 목격하니 나의 생명선이 의식되어 혼란스러웠다.
계획에 없었던 지인의 집 방문은 인생에서 ‘삶의 질’을 질문하게 했다. 살아 있다는 것만을 감사하기에는 가슴에 걸린 ‘퀄리티’ 추가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동시에 근심 걱정없이 자유롭던 휴가 기분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큰딸이 제집으로 돌아가기 전,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머리가
아픈 심각한 대화는 피하고 싶었지만 우리 부부는 꼼짝없이 잡혀 앉혔다. 플로리다에 사는 지인의 집에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손들의 결정에 따르는 환자의 상황에 딸은 회의를 가졌다. 딸은 우리가 신체나 정신적인 불구,
치매에 걸리거나 교통사고로 자각을 하지 못할 경우에 어떤 돌보임을 원하는지 물었다. 죽음에 관한 대화를 기피하는 우리는 딸의 당돌한 질문에 당황했다. 양노원에 갈것인지 집에서
치료를 받을 것인지 우리가 원하는 방안이 무엇이냐고 묻던 딸은 한수 더 떴다. 사후에 화장을 원하는지 매장을
원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어떤 공동묘지를 원하는지 아니면 어디에 재를 뿌려주길 바라는지 무엇이든 우리의 뜻을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나는 감히 나의 어머니에게 노골적으로 묻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더불어 장기 기증 의도나 뇌사 상태에 대처할 ‘리빙 윌’을 마련했는지도 물었다.
횡설수설하는 부모를 보면서 딸은 자신의 결정을 말했다. 3년전 할머니의 임종을 지킨
후부터 생각했다며 자신은 장기를 기증한 후 화장을 원하고 재는 뿌리지 말고 나무 밑에 묻히고 싶어했다. 남편이
주제를 바꾸려고 여러번 노력했지만 딸은 끈질기게 같은 질문으로 정곡을 찔렀다. 머리 뒤끝이 뻐근했다.
발설하지 않던 죽음과 사후 문제로 딸의 정면 도전을 받자 남편은 조금씩 자신의 뜻을 흘렸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로 일관하며 서늘하게 식은 차를
마셨다. 막상 닥치면 당황하지 않고 부모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딸은 냉정하도록 분명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휘청이는 나이가 슬프다. 솔직히 딸들에게 맡기는 짐을 가볍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내일 걱정보다 당장 오늘을 맹렬히 살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 나 죽은 후의 일은 “나 몰라라”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