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부터 가톨릭 교인들이 걸었다는 프랑스 국경에서 피레네 산을 넘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프랑스 길’ 은 800 킬로미터 거리다.  스페인 북동쪽에서 북서쪽 대서양 방향으로 산과 언덕,  들판을 지나며 구비구비 이어진 순례길을 걷다보면 곳곳에 있는 수 백년 된 교회나 수도원을 지난다.  자연속에 현존하는 신의 체취를 느낀다.  심지어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가끔 흐르는 물소리까지 총 동원해서 순례자의 마음을 겸허하게 해준다.

 

그곳은 현 세상과 동떨어진,  과거의 세상같다.  그렇게 하늘과 흙이 가까운 천연의 환경은 진실하고 소박하다.  하루 하루가 그야말로 축복과 명상의 날이되도록 완벽한 조건을 구비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보람찼던 작년의 체험에서 다시 용기를 가진다.

 

올 3월,  사순절 어느날 이었다.  새벽의 정기가 사방에 안개처럼 촉촉한 날 남편과 길여행을 나섰다.  떠오르는 태양의 빛줄기가 나무 가지 사이로 신비롭게 다가왔다.  빛을 받아 상큼한 여린 잎들을 주시하다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산티아고로 부르는 세인트 제임스의 초청이었다.  “아마 나에게는 신과의 대화가 더 필요한가 보다”  고 운전하는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What?” 라며 농담으로 여겼다.  하지만 나는 진지했다.  작년 봄에 살짝 체험한 산티아고 순례길에 미련이 많았던 터였다.  “함께 가겠느냐?” 고 남편의 의향을 물었더니 그는 묵살했다.  배낭을 매고 매일 걷는 일을 상상하지 못하는 남편은  “사서 고생을 왜 하느냐?”  고 반문했다.

 

성지 순례는 관광여행이 아니어서 억지로 가자고 하지 못한다.  본인이 원해야 가능하다.  작년에 함께 걸었던 한국에 사는 옛친구와 카톡을 했다.  우리는 다시 의기투합했고 작년에는 봄의 싱싱함을 보았으니 이번에는 가을의 풍성함을 보자고 했다.  날짜를 조절하고 서둘러 항공표를 샀다.  그리고 각자 몸과 마음준비에 들어갔다.

 

여름의 입구에서 그녀는 물러섰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나의 마음을 잡았다.  가고 싶을 적에,  하루라도 젊을 적에,  무엇보다도 할 수 있을 적에 가야겠다고 다짐하니 소박한 순례길이 눈앞에 보였다.  인생은 나그네 길,  혼자 가는 길이다.  문명의 이기와 인터넷 없이,  가족 친지 다 떠나서 전세기의 단순한 환경으로 돌아가 내 속으로 몰입하고 싶다.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 나를 찾고 싶다.  그리고 살아온 길을 다져보고 앞으로 진정 내가 원하는 살아갈 길을 생각하고 싶다.

  

우선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보호막을 쳤다.  기도힘이 강한 수녀님들을 찾아가 기도를 부탁드리니 기꺼이 약속하셨다.  부제님의  “왜 그곳에 가려고 하느냐?” 고 물으시던 표정이 하도 진지해서 머뭇이다가  “가고 싶어서요” 라 답했다.  그는 밝은 미소로  “걱정말고 잘 다녀오라”  하셨다.  그리고 사제 서품을 받은지 50년이 넘은 노신부님들께도 기도를 부탁드렸다.  두 분은 나의 여정을 흔쾌히 받아서 축복해 주셨다.  더불어 가족 친지까지 합세한 기도 군단으로 단단하게 무장하니 혼자 긴 도보여행을 떠나도 두려움이 없다.

 

가벼운 배낭에 칼 융의 명언을 끼워넣는다.  ‘바깥 세상을 보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는다.’   스페인에서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무엇을 깨닫고 올지 설렌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서 시작하는 ‘프랑스 길’에서 작년에 건너뛴 구간이 목표다.  분명한 것은 시작과 끝이고 그 중간은 상황에 순응하리라.  아무튼 영육이 새로워질수 있는 기회를 다시 가져서 기쁘다.  순례자의 겸허한 자세로 가을 들판으로 떠난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