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인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우간다인들의 미사에
참여했다. 금빛 찬란한 성전 앞에 전통의상을 입은 흑인신도들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순례자인 나의 모습이 돋보였는지 신부님은 우간다어에 영어를 섞어 신앙여정의 중요성을 여러번 강조하셨다.
미사후 감사드리니 그도 신앙여정 오셨다. 80이 넘은 이탈리안 수녀님이 까미노 하시는
것을 보며 가졌던 질문이 생각났다. 신부님은 무엇을 구하시나?
내가 까미노 한 기간은 한달이다. 하지만 그 한달동안 많은 것을 체험했다. 어쩌면 많은 세월을 살아버렸다. 나는 누구인가? 를 찾아나섰다가
나만 아니라 남도 찾았다. 그리고 타인과의 인간관계가 내 삶에 영향을 주고 그들의 모든 것이 나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배웠다. 또한 나의 한계도 보았다.
인적이 드문 산과 들판을 걸으며 모두가 성소인 자연에
나를 맡겼다. 삶의 무게인 배낭이 가벼워지자 신체에서 가슴으로 의식이 점차 옮겨가며
마음을 눌렀다. 시도 때도 없이 나의 과거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르고 기억하기 싫은 것들도 함께 떠올랐다.
조금씩 쏟아져나와 길에 펼쳐진 내속의 모든 것은 뜨거운 햇살에 힘겨워 꿈틀였다. 우연은 없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은 필연으로 하나씩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겼던 분노나 미움을 손에 꽉 잡은 작은 돌멩이에 담아서 길가 돌탑위에 얹으며 걸었다. 그러면 홀가분하리라 싶었는데 여전히 과거 일들이 바늘되어 뒷골을 찔렀다. ‘뿌린 대로 거둔다’
두려운 진실이다.
그후 자주 산발적인 상념에 휘몰렸다. 풀럭이는 먼지나 길가의 들꽃처럼 미약한 나의 존재감이 나를 지치게 했고
허망함이 가슴을 채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허물을 벗고보니 무가치하고
보잘것없어서 고개숙인 해바라기밭에서 나도 고개를 숙였다. 진실로 땅에 엎드려 신의 은총을 구했다.
포도송이들이 풍성하게 매달린 포도밭과 알차게 열매가 영근 올리브밭은 지나 야생 블랙베리를 따먹으며 마음을 추스렸다.
그리고 지천으로 널린 밤나무에 달린 알알이 소담스런 밤송이에 여유를 가졌다. 주변을
인식하니 나를 감싼 환경에 감사했다. 무조건 신의 뜻에 따른다고 영적 구원을 갈망했지만 나는 너무나 부족하고
초라한 생명이라 하늘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산티아고 대성당 신부님이 스페인어 강론중에 어쩌다
한마디 영어로 ‘빛의 의미’ 를 언급하셨다.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를 닮은 성당의 종소리가 유난하게 청명한 날, 나는 빛의
의미를 찾아 옛 시가지의 골목길을 헤맸다. 까미노를 하며 본 많은 아름다운 성전들을 제치고 한 건물의 돌벽에
오도카니 걸린 나무 십자가가 강렬한 빛을 뿜었다. 십자가 앞에 섰다. 까미노를 하며 나는 무슨 꿈을 꿨나? 한 발자국씩 내딛으며 내가 구한 것이 무엇이었나?
대답이 들렸다. 내 속의 상념을 걸러내고 영혼의 모습을 직시한 성과를 거뒀다.
산티아고에서 열차로 마드리드로 돌아왔을 적에 나는
한달 전과 달랐다.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을 초연하게 보내고 다음날 미국행 비행기를 탓다. 안간힘으로
버티며 공항을 걸어나오던 나를 본 남편은 화를 냈다. 바로 병원에 약속하고 의사를 만나니 “순례길에 나선 것 자체가 놀랍다”며 젊은 의사는 무리했던 나를 탓하지 않았다.
그는 챠트에서 내 나이를 먼저 봤다. 엑스레이를 찍고 강한 소염진통제를 받은 며칠후
바닷가 해변을 걷다가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무릎뼈에 금이 갔다”며 2달동안 수영외에는 일체 운동을 하지말라고 했다. 모래밭에 풀썩 주저앉았다. 스페인 의사의 처방을 따르지않고 어리석은 고집으로 부상을 키웠지만
후회는 없다.
또한 집에 돌아와 긴장이 풀리니 상상하지 못한 현상이
일어났다. 의식에 공백이 생겨서 붕 떴다. 탈진 상태여서 사람을 피했고 곰곰이 생각해도 삶의 의미나 목적이 희미했다. 까미노 하면서 버리고,
내려놓고, 비우고, 더러는 채우면서 마침내
나 자신의 한계를 넘었다. 나를 찾아나선 까미노에서 나를 잃고 온 모순이다. 하지만 걸음을 제대로 걷게되면서 다시 나를 찾기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제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아름다운 시작에 아름다운 마침을 했음을 안다. 그러나 나의 까미노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순례길의 언저리를 맴돌며 영육이 하나로 합쳐지길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