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yUSA.com

작년 여름 혼자서 플로리다에서 앨라배마를 거쳐 미시시피로 유랑했다. 산은 멀고 바다는 가까운 남부에 오래 살다보니 바다가 내 속에 스며들었다. 플로리다 북서쪽 해변에서 멕시코 만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운전하며 낮과 밤을 뒤섞었고 태양과 검은 구름사이로 숨바꼭질하며 다녔다. 그리고 지나가는 길에 만나는 볼거리를 찬찬히 구경했다.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 미국 정착시대나 남북전쟁의 흔적을 보면 가슴이 아린다. 그것들은 내가 선택한 고향의 빈약한 현주소이다.

남부에는 이야기꾼이 많다. 여행길에 만난 지역 토박이들의 과장된 스토리를 듣다보면 흥미진진한 설화는 사실로 둔갑한다.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다. 미시시피로 들어서며 들린 카페에서 구전으로 전해온 ‘노래하는 강’이라는 파스카굴라 강에 얽힌 전설을 듣고 홀깃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의 사연을 들으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성경에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 했는데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사랑에는 딱하게도 사람살이의 온갖 희로애락이 숨어 있고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사랑의 사연들이 사랑을 받는 당연한 이유이다. 모국의 5천년 역사에 점철된 많은 사랑의 전설들에 견주면 새 발의 피지만 미국의 짧은 역사에 있는 사랑의 전설은 나를 매료시킨다.

미시시피 해안의 작은 도시 파스카굴라와 고티어 사이에는 파스카굴라 강이 흐른다. 미시시피 강처럼 강폭이 거대하지 않지만 북쪽의 여러 주를 거치며 구불구불 길게 내려와 바다로 흐르는 강이다. 강을 건너는 다리의 양편에 소문대로 ‘노래하는 강’ 사인이 붙어 있었다. 천천히 두번 다리를 건너갔다가 고티어 맞은 편 바다로 이어진 강가에 차를 세웠다. 차문을 열고 나서니 작열하는 땡볕에 바람 한 점 없어 후끈하게 더웠다. 멀찍이서 낚싯대를 던져놓고 정물처럼 앉아 있는 남자는 지역인이다. 한적한 남부 바닷가 마을의 생명들은 뜨거운 햇살을 피해 낮잠을 자는듯 천지가 태고의 모습으로 고요했다. 제멋대로 자란 나무와 숲의 푸름이 하늘의 구름조각들과 천연덕스럽게 어울렸다. 조금 걷다가 가지가 휘어진 떡갈나무아래 그늘에 앉았다.

이 강에서 윙윙거리며 합창같은 노래가 들린다는 소문은 수백 년 전부터 였다. 1699년에 도착한 프랑스 정착민들이 들었고 노래의 근원을 궁금해했다는 기록을 1727년에 남겼다. 원인을 모르는 신비로운 노래를 들은 초기의 정착민들은 이 강을 ‘노래하는 강’이라 불렀다. 그후 사람들은 물고기들이나 강바닥에 있는 무엇이 소리를 낸다는 설, 강에 유령이 있다고 믿거나 원주민들을 강물에 뛰어들게 최면을 건 인어의 노래 등 다양한 추측을 남겼다. 그리고 온갖 기구를 동원해서 강의 노래를 녹음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아무도 근원을 찾지 못했다. 경이로운 현상에 대한 역설은 많지만 아직까지 하나도 증명된 것은 없다. 하지만 이곳 고티어 지역인들이 좋아하는 전설이 있다.

고티어에서 20마일 서쪽에 있는 빌록시 인디언 부족의 공주인 아노라는 파스카굴라 부족의 추장인 알타마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같은 부족의 족장과 약혼한 사이였지만 알타마와 도주해서 파스카굴라 부족에 가서 알타마와 함께 살았다. 이 사건은 두 부족간의 전쟁을 불렀다. 파스카굴라 부족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젊은 커플을 보호하겠다고 맹세했지만 숫적으로 우세한 빌록시 부족의 노예가 되거나 처형될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자 파스카룰라 부족의 여자와 아이들이 앞장서고 이어서 전사들이 서로 손을 잡고 죽음의 노래를 부르면서 파스카굴라 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 인디언 부족의 슬픈 전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강에서 들리는 사운드는 바로 파스카굴라 부족인들이 죽음 길에 부른 노래라고 믿고 싶어한다. 강의 노래를 들으려고 귀를 길게 기울였지만 강물은 무심하게 흘렀고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소곤거렸다. 강의 콧노래를 실어올 시원한 바람을 원하는 나의 머리속에서 한 노래가 들려왔다. ‘Pie Jesu, 자비로운 예수님, 자비로운 예수님…세상의 죄를 없애주시는 주여,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부드러운 리듬이 가슴으로 내려와서 전신으로 퍼지며 평안을 주었다.

동시에 내가 사는 주 앨라배마에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전설이 떠올랐다. 앨라배마 동북쪽에 있는 도시 개즈던에 있는 ‘노칼룰라 폭포’를 찾았을 적에도 나는 평화를 구했다. 폭포위에는 오른발로 서서 뛰어내리기 직전인 인디언 여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고뇌에 일그러진 그녀의 표정을 봤을적에 애처러워 연민을 느꼈다. 그때 그녀의 슬픈 사랑의 사연이 흐르는 눈물로 영원히 쏟아지는 폭포에서 하염없이 머뭇였다.

오래전 개즈던의 원주민이었던 체로키 인디언이 남긴 전설이다. 파워풀한 체로키 인디언 추장에게는 노칼룰라 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녀는 같은 부족의 젊은 전사와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한 전사보다 이웃인 크릭 인디언의 용맹한 추장을 사윗감으로 골랐다. 딸의 결혼으로 부와 명성을 가진 크릭부족과 동맹까지 맺으니 일거양득의 수확이었다. 추장은 젊은 전사를 부족에서 쫒아내고 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크릭 인디언 추장과 결혼계약을 성립시켰다. 아버지를 거약하지 못한 노칼룰라는 결혼식날 예복을 입고 두 부족인들이 모여서 벌린 축하연에 참석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슬픔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몰래 파티장을 빠져 나갔다. 그녀가 평소에 즐겨 뛰어다녔던 숲을 헤매다가 폭포로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사랑이 없는 결혼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다며 폭포 아래로 뛰어내렸다. 딸의 죽음으로 슬픔에 젖은 추장은 폭포에 사랑하는 딸의 이름을 붙였다.

강변에 앉아 옛 사람들이 남긴 사랑의 전설을 생각하다가 나른하게 오수에 빠지듯 풀어졌다. 그러나 낚시꾼처럼 나도 주변 환경의 하나로 사라지는 순간 떨쳐나왔다. 사랑하기에, 사랑을 위해 목숨도 아낌없이 희생하는 사람들의 스토리는 시간과 공간을 건너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다. 내 목숨을 내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런 사랑을 한 적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이성에 대한 흥분으로 가슴 뛰었던 기억이 희미하다. “이대로 죽으면 억울하다”며 눈을 뜨니 벌거벗은 척박한 남부의 환경이 뜨겁게 다가왔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이다. 철썩이는 물소리에 세상의 상념을 넘겨주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