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집에서 편안하게 놀다가 갑자기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자기 주차장에 내가 차를 세워뒀다는
옆집 여자의 항의다. 사실 주차장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하지만 타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집 앞의 파킹 스페이스는 자기것으로 여겼다. 쫒기듯 그곳을 떠나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며 세상을 덮은 어둠처럼 내 기분도 어두웠다. 이해와 배려가 결핍된 이웃과의 단절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지인의 이웃처럼 원칙에 따르는 ‘꽉 막힌 사람’ 보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그립다.
사실 지난 몇
년 나를 사로 잡는 질문이 하나 있다. 삶에서 ‘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문과 문 사이에 의식이 잡혀서
해답을 찾다가 힘들어 내려놓아도 나를 떠나지 않고 끈질기다. 잠을 설치며 궁금해하는 이 질문은 우연히 나를
찾아왔다. 몇 년 전 성당에서 가진 사순절 피정때다. 타지에서 푸른
눈의 노신부님이 초청강사로 오셔서 믿음과 평안 그리고 사랑을 현실속에서 찾도록 도왔다. 그가 믿음을 설명하던
첫날, 여러 모양과 색깔의 문을 모아서 합성한 사진 한장을 보여줬다. 모든 문들은 닫겨 있었다. 그렇게 닫긴 문들이 믿음을 방해하는 요소라 지적하신 신부님의 강론을
흘러들으며 나는 그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제각각 모습의 문들이 마치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성격처럼
튀어나와서 나를 매료했다. 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라
더 많은 의미를 가졌다. 단절과 화합을 뜻하고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표정은 다른 정감을 줬다.
계속 주시하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형상들이 눈에 잡혔다. 그때부터다.
다니며 문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담장이 없는 미국의 집은 문이 바로 대문이다.
나무와 디자인된 스테인드 글라스를 사용한 많은 문들이 안과 밖을 분리시키지만 안에서 밖을 내다 볼 수 있고 밖에서는 집안을
슬쩍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러나 불신과 안전이 우선하는 사회변화에 따라 문도 변했다. 두터운 통나무로 안과 밖을 완전히 차단하는 문들이 최근에 많이 생겼다. 그 문 앞에 서면 긴장감이
돈다. 냉정한 집주인에 문전박대 당하는 거부감이 일어난다.
어떻게 보면 열린 문과 닫히는 문 사이에서 사람은
일생을 산다. 삶의 시작과 끝은 나름의 많은 문을 거치며 이어진다.
문이 하나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순리와는 달리 때로는 꽉 닫힌 두 문 사이의 공간에 잡히는 고난도 받는다.
난감해서 되돌아 가고 싶어도 본인의 의지는 무력하다. 그리고 저절로 열리는 문은
없다. 주어진 상황인 잡아 당겨서 여는 문이거나 밀어서 여는 문에 적응하며 본연의 자세를 지키는 것이 사람살이다.
어쩌면 겁없이 문을 활짝 열어 젖히는 패기가 세월이 지나면서 핸들을 신중하게 돌리며 문을 열게 바뀌는 삶의 순환을 거치는
이치와 맞물렷다.
살면서 힘들었을 적마다 눈앞에 나타났던 꽉 닫혔던
문들이 이제는 모습을 들어낸다. 고맙게도 세월은 투명하게 과거를
비춰준다. 그리고 그동안 나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과 내가 문을 열고 초대한 손님들, 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인 사람들과 반쯤 열고 주춤이며 맞았던 손님들, 그리고 문 밖으로 밀어냈던
사람들, 그들 모두가 나의 삶에 흔적을 남겼다. 세상을 향한 나의 문은
자의와 타의에 의해서 변화를 거듭했다.
현재 나의 문이 궁금하다. 출생시에 열렸던 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고 싶다. 그래서 희미한 손잡이를 잡고 열었다 닫았다, 나갔다 들어왔다를 번복하거나 문턱에 걸려서 뒤로
넘어지고 앞으로 엎어져 봐도 여전히 문의 모습은 신기루다. 이렇게 이해하고 싶은 문의 의미는 끈적하게 의식의
한 자락을 잡고 있다. 문과 문 사이에서 방황하며 보이는 문앞에서 보이지 않는 문을 찾는 나 자신이 우습게
여겨진 적도 있지만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문과 눈을 감아도 보이는 문에 나는 집착한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영원히 닫길 문이라 더 애착이 간다.
싱싱한 봄기운이 문틈으로 스며들어 새싹을 돋우며 회생하는
나무의 소식을 전한다. 오늘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안에서 밖으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