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찾아온 추억 / 노랑 동물원의 '혜화동'이란 노래 속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간다고……” 오늘 아침 정말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20년 만이다.'정 현우' 전화 거는 현우도 흥분된 목소리지만 나도 적잖이 흥분되어 있었다. 누군가 '과거는 흘러가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없고 현재 또한 흘러가고 있으니, 삼세불가득(三歲不可得)' 라고 하지만 현우와의 추억은 '삼세의 장르' 에서 훼이드 아웃 될 수 없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얘, 뭐하고 지내, 아이는, 결혼 했니, 누구, 여전하지, 그땐……" 대학 1학년 19살의 봄 현우와는 기차 속에서 만났다. 앞좌석에 알지 못하는 사람과 마주보는 것처럼 쑥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며칠이 지났다. 현우가 집에 찾아 왔다. 우리 집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일이다. 만날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이일은 곧 잊어버렸다. 몇 년후 나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둔 4학년이 되었다. 도서관의 계단에서 우연히 현우를 만났다. 무척 놀랐다. 그때 나는 검정투피스를 입고 있었고 볼펜을 쥐고 있었다. 현우는 오른쪽에 서 있었다. 우리는 멋 적게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는 자신을 영문과 대학원 1학년 이며 '부자의 삼단논법’ 이란 시로 한국문학에 등단하였다고 소개를 하였다. 그날 처음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조금 검은 피부, 큰 눈, 검은 머릿결, 단정치 못한 입모양, 그리고 어딘가에 홀려 있는 듯한 모습, 보통의 키에 빛바랜 검은 바바리를 입고 있었고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못생겼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날은 오늘과 같이 화창한 봄날 이었다. 그해 여름학교 교정에는 조용필의 고추잠자리와 김민기의 노래가 무척 자주 나왔다. 현우는 벤취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아무거나 트집을 잡았다. 울프의 죽음은 사치라고 비냥 거리고 장루이바로의 인생유전은 좀 웃긴다든지 이청준의 소설은 힘이 없다느니 전두환은 정신병자라느니 시대에 묶여있는 정치의 "금서"를 해방의 논리를 이영희를 이야기하였다. 비가 내리는 날은 항구에 가기도 하고 저녁시간이면 시냇가에 앉아서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호프집의 나무 의자에 앉아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미열이 난다. 나는 한 개의 나뭇잎 그림자에도 우울해하는 샌티와 현실의 출구를 찾는 목적 없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리고 유식한 멋 장이를 애인으로 갖고 싶어 하는 낭만에 습한 어두움을 그리워하는 회색도시에 갇혀 사는 적잖이 힘든 젊음이었다. 현우가 애인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현우는 그저 예술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는 모 자르는 친구였다. 어느 날 그는 고서점에서 아주 싸게 '메롤리퐁티'의 현상학을 샀노라고 자랑하였다. 책을 빌려 달라고 하자 그는 나에게 애인으로 해주면 책을 빌려 줄거 라고 하였다. 그 후 메롤리퐁티의 책을 읽을 순 없었다. 비개인 어느 날 오후 산동네를 걸었다. 그는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서 주며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그런데 연락이 온 것은 20년이 넘은 오늘 아침이다. 그렇다고 내가 20년을 기다리진 않았다. 그저 20년 후에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 난, 그때 있지 …..” 기억은 붙이기도하고, 빼기도하고,갑자기 찾아온 20년 전의 추억으로 나는 한 며칠 멍할 거 같다. 그러나 곧 '삼세의 이치'에 머무를 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