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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

목을 감싸고 있던 프라스틱 캡을 빼고 나니 천국이었다. 그동안 곰팡이가 안났을지 염려되는 목 받침이었다. 처음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4개월 동안의 병원 생활은 40년과 같았다. 그리고 미지의 위성도시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병원 내 주변의 사람들은 거의 남자였고 의료진 외에는 걸어다는 사람이 없었다. 간호원의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이상했다. 걸어다는 사람들이 정상인이 아닐거라는 착각도 있었다.

군인병원이라 그런지 각층의 병실 복도는 휭그러니 비어 있었다. 전쟁 전사의 영혼이 윤기나는 복도에서 반짞거렸다. 밤에 되면 홀로 휄체어 미는 연습을 하느라 윤기난 복도를 왔다갔다 했다. 병원 밖의 어둠 속에서는 별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자다가 깰텐데"

티비의 자동차 선전은 아예 볼 수 없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를 보면 겁부터 났다. 특히 병원 냄새는 이제 맡기조차 거북했다. 문이 닫히면 나는 나갈 수 없다라는 생각때문에 닫지 않고 활짝 열어 놓았다.

거리의 차들은 부딧칠 것만 같았다. 세상 은 모두 공포였다. 나는 절벽에 몰린 토끼처럼 떨고 있었다. 가끔 병원에서는 정신이상 체크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하루 아침에 바뀐 인생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남편은 수 많은 생 속에 지금의 생은 티글도 안 될거라며 넓게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다독거렸다. 또 언젠가는 웃으며 지금을 이야기 할거 라고 말했다.

이즈음 영국 다이내너비의 사고가 뉴스를 타고 흘러 들었다. 간호원들이 당신은 살아서 아이들도 볼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이냐고 위로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에게 위로 하는 것은 오히려 사고 당시를 기억나게 하는 자극제였다. 위로는 상처로 다가 왔다.

방문객에게도 절대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하필 왜 나인지 이러한 상황을 받아드릴 수 없어 무척 힘들었다. 나의 자아는 이렇게 쉴새없이 꿈틀 거리고 있었다.

내가 병원에서 부러워했던 아저씨가 있었다. 이 사람은 혼자서 양치하는 사람이었다.

환자들은 대부분 이 병원에서 수년째 살고 있었다. 집안 식구들을 힘들게 하느니 차라리 병원에서 생활하는 것이 낫다고 괜한 이유를 들어 지내는 사람들 이었다.

이들은 의사 앞에서 담배 피우는 것도 예사였다. 침대 앞에 금연이라고 붙여놓은 것 안보이느냐고 의사가 말하면 난 고개를 돌릴 수 없어 모르는 사실이라고 땡깡을 놓았다. 그러나 의사들도 이들의 구원을 탓하지 않았다.

병원밖을 나가보면 여름 햇볕양지에서 휄체어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우고 나름대로 그들만의 세상을 나누었다. 병원 음식에서 부터 여 간호원의 이야기 까지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나도 옆에 한몫 끼어 들었다.

스파인코드 환자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휄체어에 오래 앉아 있어 생기는 욕창이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픔을 모르니 얼마큼 나빠지는 것을 느끼지 못해 누군가 첵크하지 않으면 상처는 계속 악화되어 나중에는 아주 고약한 모양으로 치료해야 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도 남의 도움이 필요하니 자존심들은 이상하게 문을 꼭 닫고 있었다. 몸무게를 재는데 근수를 재는 듯한 한국재래식 무게 측정기에 몸이 둥둥 띄어 잴때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마치 나는 몇근 짜리 라고 말하는 듯 하였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왔다. 그리고 서로 엄마 옆에 있겠다고 투정 부렸다. 계절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을이 찾아 와서 유리창 밖으로 낙엽이 떨어졌다. 내가 처음 병원에서 여름하늘을 쳐다 보았을때도 구름이 둥실 거렸는데 가을하늘의 구름은 더욱 둥실 거렸다. 다람쥐들이 병원 숲속을 돌아 다니는 모습을 보자 나 보다 낫은 삶이라는 비애가 솟았다.

4개월은 긴 시간이었다. 집에 무척 돌아가고 싶었으나 시간은 다가 오지 않았다. 이 시간에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 밥은 제대로 먹는 것일까? 밤이 되면 3살, 5살,12살의 세 아이들 걱정 때문에 견딜 수 가 없었다.

남편은 내가 4개월의 병원에 있는 동안 매일 현미식사와 야채주스를 집에서 만들어 가져 와 병원 음식은 먹지 않고 지냈다. 병원에서는 남편의 정성에 모두들 감탄해 하였다.

3달만 있으면 걸을 거라는 남편의 2%의 행운은 실현되지 않은 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 오는 초겨울 4개월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1998년 11월 18일 병원 문을 나섰다. 3개월 후에는 걸을 거라는 뜻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집에는 환영 꽃이 준비되어 있었고 집에서 돌보아줄 의료진들이 환영을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비련이 11월의 찬기운을 타고 가슴 깊이 후벼들고 있었다. 남편의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집안 구석구석은 냄새가 났고 엄마가 돌보지 않은 아이들은 변해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