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들과 남편'

 

녹색과 흰색이 섞인 색깔의 바다에서 녹색의 해가 뜨는 광경을 구경하러 바다로 들어갔다. 한참을 있다 나와보니 내몸에서 녹색물이 투뚝 떨어졌다. 나의 살빛도 녹색이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꿈이었다. 식은 땀이 흘렀다.

 

잊어버리자는 병상생활은 여전히 떠나지 않았다. 낮 달이 둥그렇게 떠 있는 11월은 낙엽이 모두 떨어져 누구의 얼굴도 감출 수 없을 만큼  솔직해져 있었다. 

 

"엄마, 어디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어디 있어요"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아시면 커다란 병이 오실거라고 생각해서 동생들과 아버지에게만 이미 병원에서 알렸다. 아버지는 내 소식을 듣고 매일 과음 하신다는 소식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 친척들이 오셔서 아이들을 돌봐주셨지만 오랫동안 계시지 못했다.

 

 

아이들은 이제 베이비시터에 아주 잘 적응 해갔다. 그러나 여러사람들이 바뀌는 보살핌은 아이들을 아주 혼돈스럽게 만들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는 우울해 하였고 착하던 아들아이는 장난감을 던지고 막내딸은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집안의 많은 일은 남편 몫이었다. 남편은 5시 반에 일어나 나의 메디칼 케어를 해주고 아이들을 깨워 아침식사를 먹여 학교를 보내고 회사에 갔다.

 

그리고 정오 12시가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나의 메디칼을 해결하고 점심을 주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먹을 음식을 장만해놓고 회사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저녁 6시가 되면 회사에서 돌아와 저녁준비를 하고 나의 메디칼 케어를 하고 밤 11시에 남은 마지막 메디칼케어를 해주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말이 되면 런더리, 샤핑, 아이들 액티비티 라이드주기, 잔디깍기, 샤워해주기등의 일도 하였다. 이렇게 많은 일을 혼자서 해나아갔다.

 

잠시 도와주는 아줌마가 있었지만 그다지 커다란 도움은 되지 않았다. 또한 경제적 지출이 너무 컸다. 우리 가족은 일을 나누어 하기로 하였다. 밤에 일어나 엄마를 돌보는 일은 큰딸 아이가 하고 엄마 이빨 닦는 것을 도와주는 일은 3살이던 막내딸의 몫이고 세숫물을 가져다주는 일은 아들아이가 하기로 하였다.

 

아이들이 조금씩 크자 아이들의 할 일은 이들의 나이만큼 커져 갔다.  막내딸은 세탁물 옮기는 일, 아들아이는 엄마머리 감겨주기, 큰 딸아이는 밤에 나를 돌보는 일 외에 간단한 쿠킹을 하였다.

 

남편의 건강에 이상신호가 왔다. 남편이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충분히 쉴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이웃에서는 음식과 돌봄이 있었지만  많이 부족했다. 나의 침대 옆에는 차임벨이 있었다. 이 벨은 큰 딸아이 방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벨을 누르면 딸 아이는 새벽이든 낮이든 언제나 달려와 도와주었다.

 

물론 외출 중에도 전화하면 엄마에게 달려와야 했다. 당시 중학생 이었던 딸아이가 밤에 일어나 엄마를 돌보고 학교를 다닌 일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집을 떠나 대학을 가지 전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엄마를 돌본 일은 본의 아니게 입학예정이었던 '예일대학'에 알려져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많은 학비를 면제 받았다.

 

가장 힘든 것은 아들아이였다. 사고당시를 기억하는 아들아이의 일기장에는 사고 당시 보았던 핼리콥터가 항상 그려져 있었다. 우리엄마 키는 2피트 밖에 되지 않는다고 수업시간에 에세이를 발표하여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울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들아이는 엄마가 늘 그리웠다.

 

엄마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불만과 그리움은 아들 역시 건강이상으로 나타났다. 울기만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타나고 구역질을 하였다. 아이의 안타까움은 집안 어디에도 묻어 있었다.

 

벽에는 '아이러브 마이 맘'이라는 낙서가 어디에나 쓰여 있었고 비록 엄마가 미워 장난감을 던지지만 한참 투정하고 나면 베개를 들고 휄체어 앞에 누위 나의 발가락을 만지작거리며 훌쩍훌쩍 울었다. 이때가 5살 이었다.

 

학교 사진속의 항상 긴 머리는 아들아이였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구겨진 옷을 입고 참석한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자 곁에 있던 담임선생님이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휄체어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란 무척 당황될 것 같다. 스쿨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먼 발치에서 보아야 했다. 혹시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기 때문이다. 나는 뜨거움을 깊이 삼켜야 했다.

 

하루는 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아이가 자신은 짜 장면을 아빠가 해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혼을 했나 했더란다.

 

유난히 총명하고 엄마를 사랑했던 막내딸은 지극했다. 5살 당시 외출 때의 크래딧 카드 사인은 으레 것 하였고 모임에서 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우리엄마 자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학교에는 잠옷을 입고 가기도 하였다.

 

병원에서 퇴원 하던 날은 하루 종일 내 옆 앉아 건포도를 주어 그 날은 건포도로 배를 불렸다. 9살 즈음이 되던 막내 딸은 큰 딸 아이가 대학을 들어가자 엄마 메디칼 케어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녀는 엄마의 더러운 곳을 닦아 주었고 샤워시켜 주었고 외출시에는 옷을 입혀 주었다.

 

아이들은 착했다. 자신들에게 온 어려운 상황을 잘 받아 주었다. 그러나 이러기까지에는 남편의 모범적인 생할태도와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당시 남편은 폴라로이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회사는 몇 개월에 한 번씩 레이오프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남편은 회사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남편이 없었다면 우리가족은 존재 할 수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