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나지 않은 향기'

 

책갈피의 잘 마른 꽃잎이 오래된 기억처럼 누워있다 책갈피를 넘기자 소리 없이 떨어졌다. 이 꽃잎은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남편이 병실의 화병에서 따 넣어둔 것이다.

 

“기억해 내기 싫은 일이 이제 자연스럽게 기억난다면 더 이상 아픔이 아닐 거야”

 

나에게도 이런 날이 찾아왔다. 부엌에서 아이들과 남편이 김치를 담근다고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다 뿌려야지..”아이들은 신이 났다.

 

“시장에서 배추가 하도 좋길래 사왔지”라며 남편은 배추를 버무렸다. 보통의 액 젖은 맛이 없다고 원액을 끊여 젖을 만드는 바람에 집안은 젓갈 냄새로 가득했다. 남편은 이제 김치를 담그는 일이 익숙해졌다.

 

이러한 생활을 10년 한 어느 날 남편은 “요즈음 이빨이 5개가 빠졌네” 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이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눈물이 후루룩 떨어졌다.

 

나에게 말 할 수 없었던 그의 마음이란 어떠했을까? 콩나물 무침은 파맛이라며 10년 동안 파 사는 것은 잊은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남편은 매일 저녁반찬이 걱정이다. 골프보다 불고기 세일에 더 관심 많아진 그는 손이 거칠한 주부가 다 되었다.

 

"제 인생은 6시간입니다. 아내를 하루에 4번 6시간마다 케어 해줘야 하기에 외출을 해도 6시간 만에 들어와야 하거든요.”

 

라며 10년동안 가족여행 한번 가지 못했지만 불평도 없다. 추위가 닥치자 아이들의 이불을 두 겹으로 만든다고 바느질을 하니 아이들은

 

“아빠 내 바지도 줄여주세요”하며 건냈다.

남편은 “이놈들 아빠만 시키네” 라고 말하지만 별다르게 싫은 구석이 없다.

 

요즘은 큰딸아이가 집에 있어서 아빠일이 한결 줄었다. 자신의 에세이에 엄마와 딸의 역활이 바꿘 상황이지만 자신의 인생을 크게 영향을 준 것 같지 않다고, 작가가 꿈인 딸 아이는 엄마는 아기라며 놀리기 일 수지만 우리는 향수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는 무척 친한 친구이다.

 

유독 엄마의 상황이 힘들었던 아들아이는 내가 아들 때문에 많이 마음이 아팠다고 이야기 해주면 언제 자신이 그랬냐고 잡아 땐다. 이제 훌쩍 커서 스스로 식사를 해먹는  아들아이는 학교 친구들이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한다고 도와주러 먼 길을 떠났다. 엄마에게 띵깡을 부리던 아이가 남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단다.

 

오늘은 자신은 4살 때부터 요리사였다는 막내딸 졸업식이다.

 

막내딸은 엄마가 3살 때 이렇게 되었으니 엄마가 걸었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주말만 되면 엄마 침대로 올라와 오빠와 너가 함께 엄마침대에 자서 좁아서 잠을 못잤다고 말하니 피식 웃는다.

 

 가족들은 모두 졸업식장에 간다고 김치를 담글 때부터 수선스럽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아이들 오케스트라, 졸업식, 축구, 학부모 행사에 참석한 횟수는 5손가락 미만이다.엄마는 당연히 가지못함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저녁시간에 아빠가 만든 졸업축하 스테이크를 먹으며 우리 집은 웃음꽃이 피었다.

 

고기 맛이 이상하다는 둥, 아빠머리 다시 염색해야 한다는 둥, 아이들의 요란한 대화에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었다.

 

식탁의 불빛이 어두웠으나 남편의 얼굴에 핀 검은 점들이 눈에 띄었다.

 

남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으면

 

“ 아이들이 밝게 자라 주어서 기쁩니다.”

 

라고 그 동안의 힘들었던 이야기도 소리 내지 않는다. 아내가 남편을 돌보는 일도 어려운데 남편이 아내를 돌보는 일이란 어디 쉬운 일이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말을 남편에게 묻는다면 이 사람은 다시 웃을 것 같다. 오래된 마른 꽃잎에서도 향기가 나는 것을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