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혼을 안 하는 이유

20대 중반에 일본에서 일 년 동안 어학연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여자 기숙사에서 살았으며 돈을 아끼기 위해 2 인실을 썼다. 이후 일 년 동안 네 명의 룸메이트를 만났는데, 앞 시절 두 명은 한국인이었고 뒤 시절 두 명은 홍콩인과 대만인이었다.

첫 룸메이트는 유학원에서 만났다. 그녀는 요리하기를 좋아하지만 설거지는 싫어한다기에 내 쪽에서 올타구나 룸메이트를 신청했다. 나는 요리는 계란 프라이나 하는 수준이지만 설거지는 깨끗하게 할 수 있었다. 식사 준비할 때 보조를 하고 식사 후 설거지를 하면 되겠다 생각했다. 첫날 아침, 자고 있는데 인터폰이 왔다. 허겁지겁 부엌으로 내려갔더니 맛있는 오므라이스가 차려져 있었다. 웬만한 레스토랑 보다 나은 맛이었다. 미안하고 감동했다. 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면 도울 수 있다고 말했지만 가당치 않은 제안이었다. 그녀는 새벽형 인간이었다. 6시 전에 일어나서 거침없이 불을 켜고 바지를 탈탈 털어 입고 노래를 흥얼댔다. 첫날 빼고 나는 그녀가 방문을 나서기 전까지 아침잠을 설쳤다. 대신 저녁엔 내가 늦게까지 불을 켜고 도둑고양이처럼 살살 밤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9시가 되기 전에 잠들었다. 그렇게 1, 2주를 보낸 후 우리는 알았다, 작은 동의, 즉 한 사람은 밥을 짓고 한 사람은 설거지를 한다 했지만 24시간이란 큰 흐름에서 엄청나게 시간차가 벌어지는 동거의 의미를… 결국 식사시간조차 각자의 자유를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 우리는 헤어지는 편이 나았다.

두번째 룸메이트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내 방에 배정됐다. 언어는 잘 통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녀가 올 무렵, 마침 엄마와 이모가 방문중이었다. 엄마와 이모는 딸과 조카의 룸메이트에게 당연히 식사를 권했고, 가끔은 기숙사 전원을 초대하는 파티도 열었다. 짧은 동안 기숙사 멤버들의 영웅이 된 후 엄마와 이모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내 룸메이트는 그 바뀐 상황에 대한 인식을 못 했다. 그녀는 내 밥을 다 먹었다. 내가 오면 배고파 할텐데… 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면서 먹었다고 누군가가 전해줬다. 내 밥을 먹은 후 다시 밥을 해 놓았다면 별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야 하는 그 상황이 별일처럼 느껴졌다. “이제 내 밥을 그만 먹으면 좋겠어.”

따로따로 밥을 해먹는 동안 그녀에게 남친이 생겼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녀의 남친은 한밤중에 전화를 했다. 그때만해도 휴대폰 같은 건 없던 시절이고 기숙사에는 복도에 공용전화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밤마다 벨소리에 어둠이 짤랑대며 깼다. 벨이 울리면 벙크 베드 2층에서 자고 있던 그녀가 어둠의 사다리를 밟고 내려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일본답게 지진을 느꼈다. 그녀는 보통 한바퀴 구른 후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잠을 깰 뿐이지만 그녀는 다리에 앉은 빨간 더께가 마르지 않는 일상이 반복됐다. 나름 이유는 있었다. 모든 이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또 물어야 했다. 나는? 그녀는 순간 도라도 깨우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나라면 전화기 옆에서 기다리다가 띠리링 소리의 띠 자가 울릴 때 받을 것 같아,라는 말을... 사실 그녀가 한번 구를 만큼 허둥댄다고 울릴대로 울린 벨이 다른 이의 잠을 방해하지 않을 리는 만무였다. 전화기 옆 방에서는 그녀가 소근대는 동안 잠을 못 이루는 일도 벌어졌다(그 방 주인은 룸메이트라는 이유로 내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나름 타인을 생각했지만 타인의 입장이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만 타인을 생각했다. 그런 사고방식을 말 한마디로 깨치고 고칠 수는 없을 터였다. 그건 내 영역이 아닐 뿐더러 그럴 자격도 없었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니 그녀의 짐이 사라졌다. 중국어를 사용하는 학생들과 주인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 후 생긴 결과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