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7일

어제 오후 늦게 엄마한데 전화가 왔다. 할머니께서 감기기운이 있으신데 엄마가 할머니 힘내시라고 위문공연을 해드렸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집에 가고 싶던지...

엄마가 말하는 위문공연이란 다름아닌  색소폰 연주다. 엄마는 2년 전 부터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하셨는데, 처음에는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시작하셨다가 지금은 알토 색소폰으로 전향하셨다. 엄마가 그렇게 좋아서 열심히 연습하는 색소폰을 작년에는 딱 두번 밖에 못 들어 드렸다. 엄마가 다니는 음악실은 우리집에서 차로 10분도 안걸리는 곳에 있었는데, 단 한번도 음악실까지 엄마를 응원하러 가드리지 못했다. 랄라를 데리고 엄마몰래 짠! 하고 음악실에 나타났었더라면 얼마나 엄마가 좋아하셨을까...

엄마는 작년 겨울, 학교 동창 모임에서 색소폰을 연주하시게 되면서 주중에는 하루에 네시간씩 꼬박꼬박 음악실에서 연습을 하셨다고 한다. 전화할때 마다 이런 저런 이야기는 하면서도 단 한번도 엄마가 부는 색소폰 연주가 듣고싶다고 말한적이 없다. 랄라가 하는 말 한 마디 몸짓 하나는 무슨 기네스북에라도 오른듯이 줄줄 외고 다니면서도, 나 낳아준 엄마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에 관심은 커녕 인사성 격려도 해드리지 못했다.

엄마가 아이처럼 목소리가 밝아지면서, "수미야. 엄마가 어제 음악실에서 악기를 가져다놔서 지금 집에 있는데, 한번 들어볼래?" 그리고는 엄마가 한 곡 한 곡 주옥같은 흘러간 팝송을 연주하셨다. 집안에 전화를 스피커 폰으로 바꿔놓고 랄라랑 같이 거실에 앉아서 엄마의 구성진 색소폰 연주를 듣고 있노라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 지는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어때? 엄마 좀 나아진거 같니? 할머니께서는 엄마 이제 제법 잘 분다고 칭찬하셨는데... 너가 듣기에는 어때?"

"엄마 정말 잘 한다. 감동이야! 나 지금 완전히 감동의 도가니라니까. 엄마! 진짜 훌륭해!" 빈말이 아니라 엄마의 색소폰 연주실력은 이제 한강둔치에 나가셔서 거리의 악사로 활동하실수 있을만큼 향상되어 있었다. 부드럽고 구성지며 한 음 한 음마다 안정감이 느껴지고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그냥 듣고만 있어도 그 노력이 느껴지는 훌륭한 연주였다.

이렇게 엄마가 좋아하시는걸... 왜 아직까지 한번도 진심으로 엄마의 연주를 들어드리지 못했을까... 내 삶이 뭐가 그렇게 바쁘고 대단하다고... 철부지 엄마의 이런 마음도 모른채 랄라는 할머니의 색소폰 연주를 들으면서 거실에 앉아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