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28일 

랄라가 정말 많이 자랐구나 하고 느낄 때는 잠든 랄라를 바라볼 때다. 침대 양끝이 두 팔과 다리를 벌리면 닿을 만큼 자란 랄라를 보면서 잠든 랄라의 볼에 뽀뽀를 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 보면, 이렇게 밝고 건강하게 자라준 게 어찌나 고맙고 대견스러운지 모른다. 물론 랄라의 신체 발육도 눈에 띄지만, 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일 때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랄라의 배려가 담긴 언행을 목격하는 순간이다.  

지난주에는 날씨가 너무 쌀쌀해서 랄라를 데리고 Indoor Gym에 놀러 갔었다. 두세 살쯤 되는 흑인 남자아이가 큰 아이들이 노는 미끄럼틀 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을 때, 랄라는 조심스레 아이의 엉덩이를 받혀주고, 다른 아이들이 꼬마를 밀치지 못하도록 계속 두 팔로 안전망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스톰과 나는 조용히 먼발치에서 흐뭇한 마음으로 두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랄라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을 때, 어떻게 그런 착한 행동을 했냐고 물어봤더니 랄라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 친구 루이스 동생 헬리엇도 저 남자아이처럼 어려요. 그래서 우리가 놀 때 잘 보살펴 줘야 되는데, 헬리엇 생각이 나서 랄라가 도와준 거예요. 아기는 아직 다리가 짧아서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다 다칠 수도 있으니까, 뒤에서 밀거나 Hurry up! 하라고 재촉하면 안 돼요. 그죠 엄마?" 

며칠 전 앞 집에 사는 Arco가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날, Arco는 내 방에 놓인 크리넥스 상자를 보더니 휴지를 한 장씩 뽑는 놀이를 하며 몹시 즐거워했었다. Arco가 집으로 돌아간 뒤, 난 바로 유아원에 랄라를 데리러 가야 했기에 방안을 정리하지 못하고 집을 나서야 했다. 그날 집에 돌아온 랄라에게 Arco가 오늘 우리 집에 와서 휴지를 가지고 장난쳤던 이야기를 해줬더니, 랄라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엄마. Arco는 아직 베이비라서 그래요. 랄라도 어렸을 때 티슈 가지고 많이 놀았었는데, 엄마랑 아빠가 '랄라야 재밌니?' 하고 물어봤잖아요. 제가 다 논 다음에는 엄마랑 아빠가 깨끗하게 Clean up 해 줬었어요. 왜냐면 랄라는 아직 어려서 청소할 수 없었으니까요. 이제 랄라가 Big girl 이니까 엄마방 티슈 정리해드릴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얌전히 앉아 방바닥에 쌓여있는 크리넥스 휴지를 차곡차곡 접어 주었더랬다. 

진짜 감동받은 건 어젯밤의 일이다. 지난 주말에 랄라랑 서점에 가서 새 책을 사 왔는데, 그중에 랄라가 좋아하는 DORA 책이 있다. 그 책은 작은 연필로 그림을 누르면 영어와 스페인어가 함께 나오는데, 볼륨 조절 장치가 없다 보니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만큼 자극적이다. 그런데 랄라가 내 맘을 어떻게 알았는지, 비닐테이프를 달라기에 가져다주었더니 혼자서 그림책 스피커를 테이프로 꼼꼼히 붙여놓은 게 아닌가.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엄마. 어젯밤에 이 책 랄라 한데 읽어줄 때 소리가 너무 커서 엄마가 한 손으로 스피커를 덮고 읽어주니까, 소리가 작게 나와서 랄라 귀도 안 아프고 좋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엄마 공부하니까 랄라가 이렇게 소리 나오는 곳을 테이프로 붙여놨어요. 한번 들어보세요. 소리가 작죠? 이제 엄마 공부할 때 랄라가 책 읽어도 방이 quiet 할 거예요." 

랄라의 이런 따뜻한 배려심이 건강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나와 스톰은 진심으로 랄라를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나 스스로 랄라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 일상적인 생활 습관에서부터 언행일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더 나아가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아이에게 무엇을 지시하거나 가르치기에 앞서, 부모 자신의 모습부터 돌아보게 만드는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짧은 글의 깊은 뜻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가슴으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