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약 십여 년 전, 집에서 사용하던 커피 추출기가 망가져서 나는 2인용 작은 핸드밀을 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시게 되었고, 매일 아침이면 핸드밀을 한 손으로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돌려 그날 아침에 필요한 만큼의 원두를 그라인딩 해서 마시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 작은 것이 앞으로 내가 물건을 바라보는 시각, 소비의 가치관 그리고 더 나아가 삶의 자세까지도 바꾸어 놓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작은 원을 그리는 단순한 손동작으로 시작되는 나의 아침 일과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계추의 단정한 리듬처럼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는 행위로 거듭나고 있었다. 손에 전해지는 분쇄되는 커피 원두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노라면, 서서히 핸드밀로부터 커피 향이 피어오르고, 어느새 스토브 위에선 달그락달그락 물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피 필터의 이물질을 뜨거운 물로 씻어내고, 고운 질감의 커피를 담은 뒤, 또 한 번 천천히 원을 그리듯 물을 따르면, 또-르-르-르- 커피 물방울이 투명한 유리잔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하루가 모여 어느새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나는 요즘 새로운 놀이를 즐기고 있다. 구태여 이름을 붙이자면, '간소한 삶.'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완벽함이란 더 보탤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는 뺄 것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책을 읽으며 머리로만 옳다고 끄덕이던 이 구절을 몸소 실천으로 옮기면서, 불필요한 물건이 보이기 시작했고, 군더더기가 줄자 몸도 마음도 한결 홀가분함을 느끼게 되었다. 

물건을 치우면 치울수록 깨닫는 건, 마음을 비우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와 못지않게 이곳저곳에 가득 채워진 물건을 비워가는 연습도 몹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매일 마음공부를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편했던 부분이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랜 시간 내 마음속만 구석구석 들여다보다 그것에 매몰되어, 내 몸 밖을 찬찬히 살피는 것을 잊고 지내왔구나’라는 점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앞으로도 소소한 일상이 주는 교훈을 헤아려, 삶 속에서 꾸준히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