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럭이는 깃발에 얼마나 동요하고 있는가?”

위의 물음을 던지게 된 계기는 출근길 교차로에서 내 차 앞에 정차한 화물차의 거대한 흙받이 덮개(Mudguard)와 눈이 마주치면서였다. 처음에는 놀라운 크기의 바퀴와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늘어뜨린 덮개의 모습이 신기해서 바라봤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니 덮개가 흔들릴 때마다 고무에 반사된 불빛도 함께 춤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내가 혹시 실수로 깜빡이를 켜놨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불빛이 양쪽 덮개를 동시에 비추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빛의 출처는 분명 내 차의 전조등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내 차는 멈추어져 있었고 단 한 번의 미동도 한 적이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앞의 화물차도 아무 움직임 없이 서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가 흙받이 덮개만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덮개를 비추고 있던 내 차의 전조등 불빛 또한 덩달아 요동을 치고 있었으니 참으로 신기할 노릇이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호는 바뀌었고 화물차와 나는 서로 자기 갈 길을 찾아 떠났지만, 불빛을 머금은 채 나부끼던 흙받이 덮개의 잔상은 내 머릿속을 쉽게 떠나지 않았다.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비추어 주는 거울과도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꿈꾼다. 특히 아이의 경우 조건 없는 사랑으로 아이의 감정과 느낌을 왜곡하지 않고 순수하게 비춰줄 대상이 필요하다. 왜냐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상대의 눈망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사람은 이중 구속이 아닌 공감과 이해로 상대를 대한다. 그/그녀는 내면적으로 성숙하고 정의로우며 상대가 흔들리고 있을 때 조용히 손 내밀어, “지금 느끼는 이 불안감은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 같은 것일 뿐, 너의 존재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은 아니야.”라고 눈빛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다.

나는 심리치료를 진행하면서 흔들리는 눈빛과 자주 만난다. 다행스럽게도 서서히 내담자의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고 삶의 균형이 되돌아오기 시작하면 눈빛의 일렁임도 고요해진다는 이치를 배울 기회도 여러 번 있었다. 오색찬란하게 휘날리는 룽따(風馬) 깃발은 고사하고, 짧은 순간 도로에서 바라본 흙받이 덮개의 불빛 놀이에도 쉽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나. 하지만 그 또한 지금 이 순간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마도 오늘의 알아차림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맑은 거울이 되어 그들의 ‘그들다움’을 그대로 비춰주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정진해야 한다는 바람의 가르침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고도 멀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주저앉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은 '사랑'과 '희망'이라는 것을 깨달은 어느 아침 출근길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