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12일

랄라와 둘이서만 지내게 되는 일요일이다. 아침 7시부터 일어난 랄라를 보면서 '아빠가 없어도 즐거운 일요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야지'라는 비장한 각오로, 아침도 맛있게 만들어 주고, 이쁜 옷 입히고, 스톰이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은 후 바로 차를 몰고 동네에 있는 놀이터로 갔다. 우리가 가는 산책코스에 2개의 놀이터가 있는데, 한 곳은 놀이기구는 많지만 벌레 (송충이, 모기, 개미)가 많아서 요즘은 한 블록 길을 건너가야 하는 곳의 놀이터를 간다. 그곳 모래는 발이 아주 곱고 부드러워서 마치 흰설탕 가루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인다.

맑은 하늘 위에 흰 구름이 둥실 떠가고, 랄라는 아기 그네를 타고 나는 옆에서 큰아이들 그네를 타면서 재미있는 오전을 보냈다. 그리고 서점에 가서 랄라가 좋아하는 Blue's Clues 책과 The Toddler's Potty Book을 샀고 랄라와 무려 한 시간 반씩이나 서점 안에서 놀면서 랄라가 원하는 책을 모두 읽어주었다. 흡족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온 랄라는 아주 고운 얼굴로 낮잠을 잤다.

'오후에는 뭐로 또 랄라를 즐겁게 해줄까?' 별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일단 랄라를 데리고 공원까지 가는 길을 걸어서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한 시간이 걸릴지 두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맘껏 뛰어놀게 하면 랄라는 분명 오늘 밤 깊은 단잠에 빠져들 것이다. 우리 모녀는 이번에 무려 세시간을 넘게 공원을 걷고 놀이터에서 만난 강아지랑 놀면서 오후 햇살을 등지고 7시경에나 집에 왔다.

랄라 목욕은 항상 스톰이 함께 하는 일과라서, 두 부녀가 얼마나 이 시간을 알콩달콩 재미있게 지내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스톰이 한국에서 당장 올 수도 없는 일이고 하니, 오늘은 내가 직접 욕조에 랄라를 데리고 들어가서 스톰이 하던 데로 흉내를 내봤다. 맘껏 물장구도 치게 해주고, 서로 몸도 닦아주면서 랄라도 기분이 좋았고, 나도 오랜만에 랄라의 몽실통통한 손발을 닦아 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 씻기고 기저귀까지 채워놓은 후에 일어난 것이었다. 아니 갑자기 랄라가 침대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더니만 현관문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이다. "어! 라랄야..." 근데 우리 랄라가 현관문을 부여잡고는 "아빠! 아빠!" 하고 엉엉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평소에도 하루에 몇 번씩 아빠를 찾는 랄라니까 곁에 가서 "아빠는 어야 가셨지? 금요일 되면 우리한테 오실 거니까 엄마랑 기다리자"라고 위로했더니, 이번에는 스톰의 여름 샌들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아빠를 부르짖으며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내 머릿속은 아가 울음소리로 새하얗게 되고, 닭똥 같은 눈물이 랄라의 두 눈에서 주르륵 떨어졌다. 

응급처치로 일단 스톰이 묶고 있는 호텔에 전화했다. "랄라가 아빠 찾으면서 너무 울어서 연락했어." 스톰이 당장 랄라를 바꿔 달라기에 우는 랄라를 데려다가 전화를 안겨 주었더니 이제는 더 크게 울면서 꺼억꺼억 흐느끼기까지 한다. 한참 동안 둘이 이야기하게 놔두다가 내가 다시 받았더니 이번에는 스톰이 말이 없는 것이다. "여보세요? 스톰! 끊었어? 여보세요? 어...이상하다... 왜 말이 없지?" 이때 스톰의 무너지는 듯한 한마디 "나도 너무 슬퍼... 흐흐흑..."

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는 부녀다. 스톰과 랄라가 눈물을 함께 흘리며 서로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오히려 잔잔한 감동을 주는 한순간이기도 했다. 이런 일상적인 에피소드가 내가 스톰과 랄라를 영원히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지는 이유가 아닐까?